[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2021년 연말까지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그 속도는 제각각이다.
브라질, 러시아 등 일부 신흥국을 필두로 금리 정상화가 지속된 가운데 지금은 선진국들의 금리 인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 구조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한국은 선진 경제권 가운데 먼저 금리를 올린 나라에 속한다.
각 나라들은 글로벌 인플레 압력과 자국의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해 비슷하지만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가장 적극적인 금리 인상국 브라질..모두가 주목하는 나라 미국
올해들어 금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올린 나라는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올해 75bp 세 차례, 100bp 두 차례, 150bp 두 차례 등 총 725bp의 금리를 인상됐다. 12월 회의에선 기준금리를 150bp 인상했다.
2021년 브라질 중앙은행의 목표 물가는 3.75%다. 하지만 2021년 물가 상승률은 10%를 상회하고 있다.
브라질의 12월 통화정책위원회(Copom) 성명서를 보면, 브라질은 올해 기준금리 9.25%, 물가 10.2%, 환율 5.65헤알을 상정하고 있다.
내년엔 물가 4.7%, 기준금리 11.25%, 환율 5.65헤알을 예상하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더라도 지금의 높은 물가 대응을 위한 움직임이 더 필요하다"면서 1~2차례 더 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국은 전세계가 주목할 수 밖에 없으며, 다른 나라의 정책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다.
미국은 이번 FOMC를 거치면서 내년 3차례, 내후년 3차례, 그리고 2024년 2차례의 금리인상 계획표(점도표)를 세계에 제시했다.
FOMC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의 올해 예상치는 3.7%에서 4.4%로 상향했고, 내년 전망치는 2.3%에서 2.7%, 2023년은 2.2%에서 2.3%로 높여 잡았다.
물가 상승압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둔화될 수 있지만 상당기간 상승률이 2%를 웃도는 국면이 이어질 수 있어 지속적인 금리인상을 공언한 상태다.
파월 의장은 12월 FOMC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은 완전고용의 가장 주요한 위협일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금리를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 다가오는 회의들에서 금리인상 시기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연준의 공개시장조작을 하는 뉴욕 연은을 지휘했던 윌리엄 더들리 전 총재가 3월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빠르면 테이퍼링 종료와 함께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 정책정상화 길에 접어들었지만...미국과 상당한 온도차 보이는 유로존
선진 경제권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입지를 차지하는 유로존도 통화정책 정상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유럽은 아직 적극적으로 인플레 압력에 대응할 의도는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현지시간 16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은 예정대로 내년 3월 종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존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일시 확대하기로 했다.
ECB는 기준금리인 레피(Refi) 금리는 0.0%, 예금금리는 마이너스(-) 0.5%로 각각 동결한 뒤 1조8500억 유로 규모 PEPP도 예정대로 내년 3월에 끝내기로 했다. 대신 기존 기존 자산매입프로그램(APP)을 통한 채권 매입은 당초 매월 200억 유로에서 내년 2분기부터 매월 400억 유로로 늘릴 계획이다.
유럽의 금리 인상이나 물가 압력에 대한 판단은 미국과 많이 다르다. 아직은 금리인상이 멀리 있는 경제존이 유로존이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내년 금리인상 가능성은 아주 작다. 인플레이션이 내년에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오미크론 변이도 단기적 전망에 역풍"이라고 했다.
ECB는 일단 22년 테이퍼링 종료, 23년 금리인상 구도 속에 있다.
특히 파월이 인플레 압력과 관련 '일시성' 판단을 폐기처분했지만, 라가르드는 아직도 '일시성'에 대한 관점이 강한 상태다.
박민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달리 유로존은 기대인플레이션이 2% 미만이고, 독일의 VAT 인하 되돌림 효과 종료에 1월부터 유로존 물가는 큰 폭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면서 "22년 중 에너지 가격 상승률 안정화 전망 등도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유로존의 23년~24년 물가 전망치 1.8%는 소폭 상향 조정만으로 금리인상 조건 충족이 가능하다"며 "ECB 역시 경제전망의 기술적 가정에서 기준금리와 밀접한 3m EURIBOR 금리 전망을 기존 -0.5%에서 -0.2%로 상향조정해 금리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CB가 테이퍼링 스케줄을 제시하고 통화완화 축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여전히 미국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상황이긴 하다.
■ '깜짝' 인상해버린 영국...갸우뚱하는 사람들
영국은 '깜짝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영란은행(BOE)은 1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깜짝 인상했다. 영국 기준금리는 0.1%에서 0.25%로 15bp 인상됐다.
BOE는 "가파른 물가 상승세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 긴축이 필요하다"면서 인상의 이유를 밝혔다. 금리 동결 기대가 컸지만 영란은행이 3년여만에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이다.
BOE는 2018년 8월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올린 바 있다. 그런 뒤 지난해 3월 코로나19 확산 시 0.1%로 인하한 뒤 2년 가까이 금리를 동결해 왔다.
지난 11월 영국의 CPI는 5.1%로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달 초 고용을 근거로 금리를 동결했으나 12월엔 인플레 압력으로 결국 인상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시기와 관련해선 입방아들이 많았다.
엘렌 몽스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잘한 결정임에도 시기는 잘못 선택했다. 기준금리 인상을 하려면 11월이 더욱 적절했다"며 "고인플레이션 현상이 뚜렷했고 오미크론도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미크론 불확실성이 여전한데 왜 1월이 아니고 이번 달 금리를 인상했는지, 왜 25bp가 아닌 15bp 소폭 인상한 것인지 등 의문도 제기됐다.
영국은 현재 오미크론으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영국 채권시장 내 12월 금리 인상이 후퇴한 상황이었으나 BOE는 예상 밖의 결정을 내렸다.
BOE는 코로나19에 대한 학습 효과로 경기 하방 압력이 완화되고 있고, 서비스에서 재화로 소비 순환이 나타나 가계소비 총액이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러면서 오미크론 리스크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
오미크론 보다는 고용과 물가에 주목한 결과라는 평가다. 아울러 오미크론에 따른 병목 현상 해소의 지연과 재화 소비 확대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될 가능성으로 인상한 측면도 있었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8~10월 실업률은 4.2%로 하락해 BOE 전망치에 부합한 가운데 구인 건수 최고치 경신, 구인/실업 비율 최저치 기록 등 타이트한 고용 시장 여건이 나타났다"면서 "이에 BOE는 4분기 실업률 전망치를 4.5%에서 4%로 하향 조정하고, 임금 상승에 따른 물가 상방 리스크에 주목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원은 "물가 또한 BOE의 금리 인상 근거로 작용했다. 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11월 CPI 상승률(y-y)은 5.1%로 시장 컨센서스(4.7%)와 BoE 전망치(4.5%)를 크게 상회했다"면서 "22년 CPI 상승률 고점은 5%에서 6%로 상향 조정됐다"고 지적했다.
오미크론 노이즈가 완화되면 영국이 추가적인 금리 정상화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채권시장의 반응은 놀라움과 함께 당국에 대한 불신도 내비쳤다.
예상치 못한 금리 인상에 길트채 10년 금리는 정책 결정 발표 직후 깜짝 놀라 10bp 급등했으나 장중 상승폭을 되돌리며 결국 2bp 남짓한 수준에서 거래를 마쳤다.
영국은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9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난 국가다.
■ 글로벌 통화정책의 '섬' 일본
일본은행은 오늘(17일)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했다. 10년물 국채금리 목표도 0%로 유지했다.
올해 각국의 인플레 압력이 커지면서 금리인상 예상 시점이 당겨지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에 대한 평가는 다른 나라와 달랐다.
일본은 앞으로도 통화정책을 크게 변경시키기 어려운 나라로 평가 받는다.
각국이 물가 압력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금리를 인상해야 할 만큼 인플레이션이 오를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물론 글로벌하게 인플레 압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전혀 따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일은은 최근 도매가격을 나타내는 11월 기업물가지수가 전년 동월비 9% 올라 198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 원자재 가격 상승, 엔화 약세 등으로 수입물가가 크게 올라 기업물가도 최근 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일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소비가 취약한 상황에선 일본 기업들이 쉽게 가격을 전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기업에 대항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일본의 10월 근원 소비자물가는 0.1% 오르는 데 그쳤다.
이날 BOJ는 내년 4월부터 CP와 회사채 매입 규모를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점차적으로 축소해 간다는 테이퍼링 계획을 밝혔다. 일단 이 발표는 위험자산 시장의 심기를 건드려 주식 매수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다.
BOJ는 회사어음(CP)과 회사채 등은 내년 3월까지 약 20조엔 한도까지 매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내년 4월부터는 CP는 약 2조엔, 회사채는 약 3조엔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인 총 5조엔 한도까지 자산 매입 규모를 점차적으로 낮춰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간 단위로 ETF 12조엔, 일본 REITs는 1,800억엔 상한선을 두고서 관련 자산을 매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BOJ는 코로나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추가적인 완화 정책이 필요할 경우엔 주저하지 않겠다며 장단기 정책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낮출 수 있다고 했다.
■ 한국, 먼저 움직인 자의 여유...그리고 그 밖의 나라들
2021년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 이벤트가 거의 종착역에 도달했다.
한국은 8월과 11월 금리를 올린 탓에 금리인상 '속도조절'을 논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주열 총재는 전날 물가설명회에서 "우리가 금리 올릴 때(8월) 내년까지 연준이 금리를 안 올릴 것이란 예상들이 있었다"면서 "우리가 한발 먼저 움직인 게 통화정책에 상당한 여지를 줬다"고 했다.
총재는 "선제적으로 움직인 게 정책 유연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금리결정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 코로나 확산을 거론하면서 속도조절 여지도 남겼다. 물론 1월, 2월 중 언제 올리느냐는 질문엔 즉답을 하지 않은 채 "(11월 금통위 때) 1분기 인상을 배제하지 말자고 말한 바 있다"고 했다.
국내 채권시장에선 1월 인상이 미뤄지거나, 1월에 올리면 추가 인상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인식이 강화됐다.
각국은 2021년 막바지 통화정책 이벤트를 치렀다.
선진국 중엔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한 0.50%로 결정했다. 9월 23일 25bp 인상한 뒤 연속 인상이다. 노르웨이는 선진국 중 가장 매파적인 행보를 보이는 나라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오미크론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중앙은행 총재의 경기 자신감은 남달랐다.
외위스테인 올센 총재는 "오미크론으로 야기된 불확실성이 상당하나 노르웨이 경제 성장세가 전망 수준에 부합한다면 3월에 재차 기준금리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코로나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 가능성을 감안할 때 총재의 자신감이 지나치다고 평가하고 있다.
터키는 남 다른 실험 중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16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0bp 인하해 14%로 결정했다.
터키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말을 안 듣는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해 버리고 직접 통화정책 운전대를 잡았다.
터키는 9월 23일 100bp, 10월 22일 200bp, 11월 19일 100bp, 그리고 12월 16일 100p 등 최근 4차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600bp 인하했다.
대통령은 터키 화폐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린 뒤 국민을 위해 최저임금을 50% 인상하는 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최고의 경제전문가인 나라가 터키다.
이밖에 12월 마지막 이벤트에서 멕시코 중앙은행(5.0%→5.5%)은 기준금리를 50bp 인상했으며, 인도네시아(3.5%), 스위스(-0.75%), 대만(1.125%), 필리핀(2.0%) 등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22년을 앞두고 각국은 인플레 압력 강화에 따른 통화정책 정상화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처한 사정이 달라 통화정책 정상화 움직임엔 상당한 온도차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