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이슈와 추경으로 시장금리는 오름세를 지속 중이지만, 추경 불확실성은 걷히지 않고 있다.
조만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인 만큼 추경의 정치적 성격도 강하다는 평가다.
이자율 시장에선 이번 추경이 아니라 다음 추경이 문제라는 식의 평가도 나오면서 불확실성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 사실상 '첫번째' 연초 추경...다시 선거 앞두고 실시되는 추경
정부가 지난달 71년만에 1월 추경을 의결했다.
오미크론 확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작년말에 의결한 예산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실시되는 추경이다.
6.25전쟁 때인 1951년 1월 추경이 있었지만, 당시는 국가가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던 때였다.
당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은 환율 폭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숫자를 고쳐야 했다.
아울러 한국전쟁 중이었던 특수한 상황이었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 그 때의 회계연도는 4월부터 시작됐다.
사실상 이번 1월 추경은 한국 현대사에 처음 있는 특수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다보다 3월 9일 대선을 앞둔 추경이란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선거 전' 추경이 많다보니 의혹이 시선이 이는 것도 당연했다.
지난 2020년 4.15 총선, 서울·부산 지자체장의 성범죄로 인해 벌어진 작년 4월 7일 재보궐 선거에 이어 이번엔 대선을 앞두고 추경이 실시되는 것이다.
■ 정부, 14조원 선 지키기
추경에서 정부 안이 크게 수정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여와 야가 모두 추경 규모를 늘리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제시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긴 쉽지 않다.
정부는 전날 국회 예결위에서도 14조원에서 규모를 크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부가 제출한 규모(14조원) 전후에서 증액과 감액은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30조원, 50조원과 같은 규모의 금액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전에도 이런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 전날에도 홍 부총리는 "여야가 합의해서 35조원, 50조원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국무총리도 나서서 현 수준에서 더 늘리기 어렵다는 점을 거들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8일 "추경에서 국가채무를 더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더 늘리고 싶으면) 재원 마련 방법을 국회에서 말해달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수준에서 1차 추경 규모가 크게 변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일단 14조원 정도에서 1차 추경을 한 뒤 선거가 끝난 뒤 다음 추경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 민주당의 입장...일단 무조건 더 늘리는 게 善
민주당의 많은 의원들은 한국 국가재정이 상당히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빚을 내지 않는다면서 답답해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추경 규모의 대대적인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경험이 많든 적든 대부분 여당 의원들은 추경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요구했다.
민주당의 80년대생 젊은 피 장철민 의원은 8일 "추경(논란)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면서 "추경이 100조원이든, 200조원이든 국민의 합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책임하게 수십조원 얘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장 의원은 정부가 작은 돈 14조원에 연연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도 대폭 증액 필요성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었다.
양기대 의원은 "정부가 추경 규모 늘리기 어렵다고 하니 소상공인들은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면서 "80%가 아닌 100% 손실보상을 해달라. 다시 한번 추경 규모와 대상 논의를 과감하게 하자"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약자들을 위해 '한 마디 했다'는 역사를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강민정 의원은 7일 "21년 기준 소상공인·자영업자는 556만명이었다. 하지만 방역지원금 대상, 지원 금액 모두 문제가 있다"면서 폭넓은 지원을 강변했다.
강 의원은 "21년 기준 소상공인·자영업자 중 320만명에게 3백만원씩 주면 9.6조원이다. 그런데 소상공·자영업 기준을 달리 하면 700만명을 넘을 수 있다"면서 대상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민의힘...세출 구조조정 해서 마련하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추경에 찬성하지만 접근법엔 큰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추가로 필요한 돈을 적자국채를 찍어서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작년말 편성한 예산안의 구조조정을 통해서 돈을 마련하자는 쪽이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8일 "민주당이 14조원이 적다고 국채 발행하자고 항의한다. 나라 빚이 적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국민의힘은 추경이 필요하지만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올해 예산안 607.7조원 중 칸막이 예산도 심하고 불용액도 많다"고 했다.
윤영석 의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해 추경하는 건 문제"라며 "기존 607.7조원 본예산 중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돈 쓰는 데만 귀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세출구조조정이 안 된다는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추경인 만큼 대선용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이 사실상 금권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엄태영 의원은 "이번 추경은 방역을 빙자한 선거용 매표 추경"이라며 "야당 의원들은 거의 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도 1월 추경은 태어나서 처음 볼 것"이라며 "이번 추경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정부, 당장 세출 구조조정 어렵다
국채를 더 발행하지 않고 추경 규모를 늘리기 위해선 작년에 짠 기존 예산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잡혀 있는 돈 쓸 계획을 연초부터 수정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8일 "추경을 위해 어떤 사업을 삭감할지 1~2월에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감액 조정을 위해선 사업집행 부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총리는 "확정된 사업을 함부로 깎을 수는 없다"면서 "1월에 막 시작하려는 사업을 가위로 자를 수는 없다"고 했다.
사실 얼마전 책정해 놓은 예산을 당장 없었던 일로 하는 일이 어렵긴 하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도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세출 구조조정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면서 "경제주체들의 불확실성을 감안하지 못한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국무총리도 거들었다.
김부겸 총리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어떻게 10조원씩 덜어내겠나"라며 "무조건 몇10조원씩 짜내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 세출 구조조정 어려운데...그래도 추경 따른 채권시장 우려 동조하는 부총리
정부는 그러나 금리가 이상 급등하는 지금을 상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전날 홍 부총리는 "14조원 발표했을 때 국채시장 금리가 30bp 상승했다. (추경안 증액을) 국채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부총리, 총리 등은 14조원 추경은 단순히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소요 뿐만 아니라 국채시장 영향, 국가신용등급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수치이기 때문에 이를 크게 바뀌기는 어렵다는 입장임을 강조했다.
부총리는 또 추경이 국채시장과 연관된 이슈이기도 한 신용등급에 미칠 영향까지 우려했다.
홍 부총리는 "추경 증액이 향후 무디스, 피치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사와 협의할 때 국가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간 신평사들의 한국의 확대 재정 등에 대해 이해해줬지만, 계속 규모를 늘리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총리는 "지난 3년간 협의해본 바 우리 사정을 이해했고, 또 재정당국이 국가채무와 관련해 노력을 병행한다는 점을 평가해줬다"면서도 "(지금처럼 계속 늘리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에 와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부총리는 특히 정부가 재작년 제출했던 재정준칙을 말로만 하고 국회에서 입법이 안 되는 점에 대해 신평사들이 우려를 표명했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IMF나 해외 신평사들은 한국의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 즉 빚이 늘어나는 '속도'를 우려하고 있다.
여당이 과감한 추경을 거론하면서 적자국채를 더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부총리가 볼 때 자꾸 이러면 해외에서 한국의 신용도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부총리는 또 민주당이 주장하는 세출 구조조정 없는 35조원 추경이 단행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p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 대선 결과 따라 추경 우려 변할 가능성은?
민주당이 적자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국민의힘이 세출 구조조정을 통한 추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채권시장 수급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된다면 한국은 유례없는 재정 확장 실험에 나서게 되면서 채권시장이 더 큰 곤경에 처할 것이란 예상도 보인다.
은행권 베테랑 채권매니저 A씨는 "살면서 이재명 같은 포퓰리스트는 처음 봤다"면서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 채권시장은 더 망가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돈만 풀면 다 된다는 이상한 사람에 대해 경제 전문가라는 말도 안되는 프레임을 짜기도 하는데, 가증스럽다. 그는 그야 말로 경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 매니저는 과거 DJ-JP 연합과 같은 방식으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해 한국경제가 이상한 실험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나마 추경에 대한 우려는 줄 것으로 봤다. 국가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기재부 차관 출신의 의원들이 국민의힘에 포진해 있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예결위원들은 적자국채의 대폭 축소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 어떤 정권이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돈을 쓰고 싶어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등을 거론하면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민주당 35조원, 국민의힘은 50조원의 추경 주장, 세출 구조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채권시장은 계속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증권사 관계자 B씨는 "윤석열이 당선되고 국민의힘이 아무리 세출을 줄인다고 용을 써봐야 50조원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말했다.
증권사 채권딜러 C씨도 "이재명·윤석열 후보 누가 되더라도 추경 부담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채권딜러 D씨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추가적인 추경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도 채권시장 수급 부담은 불가피하다. 다만 현재 대통령 당선 확률이 높은 윤석열 후보가 될 경우, 그래도 기본소득 같은 걸 주장하는 이재명 후보보다는 추경에 대한 부담이 조금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