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 유동성 증가율 추이, 출처: 한은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시중 유동성 증가율이 1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날 한은이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동향'을 보면 12월 광의통화(M2)는 3,613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11월에 비해 23.8조원(0.7%) 늘어난 것다. 특히 전년비 증가율은 13.2%를 기록해 2008년 11월(14.0%) 이후 13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해 8월과 11월 금리를 두 차례 올렸고 정부는 추석 연휴 이후 대출 규제를 크게 강화했지만, 두드러진 유동성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정책금리 올리고 대출규제 했는데도 상승률 더 증가한 이유는
한국은행은 작년 8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1월 기준금리를 25bp씩 세 차례 인상했다.
이처럼 통화당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유동성 죄기에 나섰으나, 정부는 재난지원금 등으로 돈을 풀고 있다.
이런 사정과 함께 수출 결제자금 유입 등으로 통화량은 늘었다.
전체적으로 유동성 증가율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2017년 9월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2020년 12월 M2 증가율은 9.8%를 기록했으나 작년 초부터 두 자리수로 증가율을 확대한 뒤 꾸준히 오름폭을 키워가는 중이다.
작년 1월 10.1%로 10%대에 진입한 뒤 3월엔 11.0%로 높아졌다. 그런 뒤 8월 12.5%를 기록하면서 12%대를 나타내더니 12월엔 13%를 넘어선 것이다.
M2 증가 상황을 경제주체별로 보면 기업이 14.6조원, 가계 및 비영리단체가 14.4조원 늘었다.
한은은 "연말 정부의 재정자금 집행, 양호한 수출 증가에 따른 기업 결제자금 유입 등으로 기업 쪽에서 늘었고, 가계 쪽에선 가계대출의 감소세 전환에도 불구하고 주식 등 대체자산 매도, 재난지원금 지원 효과 지속 등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M2와 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예금만 포함하는 좁은 의미의 통화량인 M1의 경우 작년 1,342조원으로 11월보다 0.6% 줄었다. M1이 전월비로 감소한 것은 2018년 12월(-0.4%)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 통화와 재정 엇박자 논란은 '정도'의 문제
한은이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을 조이고 있지만, 정부가 지속적인 추경이나 재정집행 등으로 유동성을 풀고 있어서 엇박자 논란도 일고 있다.
정부와 한은 등 당국은 그간 정책 엇박자가 아니라 팔러시 믹스라는 입장이다.
한은은 정책금리 인상이 무차별적인 효과를 내는 만큼, 사회의 특정 어려운 부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재정 집행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재정정책이 과도해 전체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 이러면 정책 조화라기 보다는 정책 엇박자에 힘이 실리게 된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은 돈줄을 죄지만 정부는 재정투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중"이라며 "말이 좋아 정책조화지, 지금 한국의 행태는 엇박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간 이주열 한은 총재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 비판에 대해 '정책 조화이며, 상호보완적 정책 행위'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다만 정책조합, 폴리시믹스는 '정도'가 중요하다. 또 특정한 큰 방향을 향해 힘을 합칠 때 그 위력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
위의 채권딜러는 "당연히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방향이 달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 방향이 확연히 다를 경우 정책 효과는 떨어지고 물가 상승 압력만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정부, 그리고 곧 들어선 새 정부가 계속해서 대규모 추경을 통해 국채발행을 남발해 추경을 늘리면 물가도, 금리도 더 오르게 될 것이란 비판도 보인다.
다른 증권사 딜러는 "지금의 정부는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금리를 미친 듯이 올리면서 돈을 푼다는 게 말이 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현금이나 대출 지원을 해 줄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이자율을 급등시켜버리면 정책이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지원 효과와 실질적인 지원 효과가 따로 놀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끊임없이 정책 실패 입막음을 위해 돈을 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도 정치권의 과도한 돈풀기 주장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홍 부총리도 재정정책에 따른 금리의 과도한 상승 등을 우려하는 중이다.
홍 부총리는 전날 여야정 추경 협의에서 정치권이 과감한 돈풀기를 주장하자 "추경은 단순히 재정지출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물가와도 직결되고 최근 국채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국가신용등급과도 관련돼 있다"면서 무조건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