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국내시간 24일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글로벌 천연가스와 원유 수요에서 큰 부분을 러시아와 세계적 곡창지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벌이면서 물가 압력에 대한 경계감도 상당하다.
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에 장중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비축유' 방출 발언 등으로 상승폭이 축소됐지만, 향후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전날 금통위 만장일치 금리 동결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안전자산선호로 급등했던 채권가격은 이날 상승분을 상당폭 반납하는 중이다.
■ 통화당국, 사태 악화시 인플레 압력 커져...금융당국 모니터링 강화
전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전면전으로 가면 물가에 큰 상방 요인이 된다"면서 "(물가와 관련해) 상하방 요인이 다 있지만 상방 쪽에서 주목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라고 밝혔다.
오후 경제전망 설명회에서 이환석 부총재보는 "이번 전망에선 전면적 무력충돌과 전면적 경제제재를 모두 감안하지 않았다"면서 "(향후) 물가 상방 요인, 성장 하방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웅 조사국장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상방 리스크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전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은은 비상 데스크를 가동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은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라며 "24시간 비상 모니터링 체제를 가동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하면서 대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정부에서도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아침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에 더해 글로벌 긴축 등이 중첩돼 대외리스크가 점증하고 있는 만큼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적시에 탐지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필요시 최대 2조 긴급 금융지원프로그램을 가동해 관련기업의 자금애로 해소에 필요한 자금을 적극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 압력과 함께 경기 우려가 동시에 커질 수 있는 국면을 맞아 당국은 일단 '주시'하는 중이다.
■ 원자재발 인플레 압력 강화는 모두가 경계...스태그플레이션 부각 가능성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경제는 당분간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가능성을 주시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물론 성장 둔화에 직면할 것이란 예상도 많다. 이 둘이 겹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올 수 있다.
BMO Capital Markets의 Ian Lyngen은 "에너지 위기는 대부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된다"고 진단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기적으로 안전자산선호에 따른 채권 강세 요인이지만, 좀 길게 보면 인플레 압력 강화로 인해 채권을 압박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금리동결 만장일치 결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으로 채권시장이 내달렸지만, 인플레 우려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울러 러시아에 대한 높은 에너지 의존 등을 감안할 때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또 곡창지대 우크라이나의 사정 등을 감안해 원유가격 급등 뿐만 아니라 곡물 가격이 뛸 수 있어 에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신환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석유 등 유럽의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제재가 어렵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도 어렵다"면서 "이러한 제재는 반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의존도가 높은 석유, 소맥(밀), 주요 광물 자원 등의 수급에 차질을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경우 공급망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동 국가들의 정치,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통화정책은? '물가 때문에 인상 속도 강화' vs '정상화 속도 조절'
인플레 압력 강화는 화폐 가치 저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금리를 올려 돈 값이 더 추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고물가가 경기 둔화와 맞물리면 대응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전날 이주열 한은 총재가 물가 압력 강화에 따른 금리인상의 '기계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물가 압력이 더 커지는 것은 상당한 정책적 위협 요인이다.
지금으로선 지정학적 리스크가 얼마나 지속될지가 관심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으며, 이 경우 경기도 하방 압력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긴축 속도를 어떻게 가져갈지 금융시장은 계속 주시할 수 밖에 없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코로나19로 생산 차질을 빚은 공급망 교란과 일손 부족에 따른 물류대란으로 물가 급등이 골칫거리가 된 상황"이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처럼 ‘우크라이나 합병’ 이 현실화되기 전까지 러시아의 무력 행사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문 연구원은 "미국 포함한 서방국의 제재는 경제제재와 대치상황에서 압박하는 것으로, 러시아도 서방의 제재에 맞서 원유 및 가스 수출 제한으로 대응할 경우 에너지 가격을 높이며 글로벌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연준이 3월 첫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인플레이션 위험을 높이면서 더욱 매파적인 속도로 대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의 월러 이사는 "경제지표가 아주 강할 경우 3월 50bp 금리 인상을 지지한다"면서 "상반기 중 총 100bp를 올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플레와 경기둔화가 같이 오는 상황에선 정책결정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플레 압력과 관련해 초장에 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지,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인한 경기 충격 가능성을 감안해 통화정책 정상화의 속도조절에 무게를 둬야 할지를 놓고 의견 차가 적지 않다.
B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공급 요인에 의한 인플레 압력 강화에 강력하게 대응하다 보면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면서 "통화당국자들도 이를 감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