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최근 연준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전망이 강화될 때 시장의 장기금리는 눌리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연준이 경기 자신감 속에 호키시한 면모를 과시하자 결국 금리 전반이 다시 크게 뛰었다.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경기 자신감을 꺾지 않은 점을 시장은 인정해 준 것과 같은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금융시장 상당수 종사자들이 예상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중앙은행들은 '거기까지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연준, 경기 '오버킬'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응답하라 1994
연준 관계자들은 최근 장단기 금리차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5월 50bp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시장에선 원자재 가격이 이미 급등해 경기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강력한 금리 인상을 시사하자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연준은 특히 시장 일각의 긴축에 따른 '오버킬' 가능성과 거리를 두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이 수요를 지나치게 억제해 결국 경기가 냉각되고 말 것이란 시장 일각의 믿음을 그다지 지지해 주지 않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주 전미경제학회(NABE)에서 매파적인 발언을 하면서 다시금 자신들의 통화정책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초기에 강도 높은 금리인상을 통해 인플레에 대응하면서 경기 연착륙도 도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파월의 입장 발표와 함께 과거 연준의 축적된 경험 등도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많이 주목받는 해 중의 하나가 소위 '채권 대학살기'로 알려진 1994년이다. 당시 채권은 학살을 당했지만, 경기는 침체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가에 대한 우려로 인상 사이클 초기에 금리를 과감히 올린 뒤, 경기 충격 가능성 신호가 나타나면 금리를 다시 내리는 등의 대처를 통해 대응했던 경험이 거론되는 것이다.
연준은 1994년 당시 1년간 50bp 3번, 75bp 1번 등 금리를 300bp 인상했다. 이후 긴축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가 심화되자 인상 종료 후 반년 후인 1995년 7월과 12월, 1996년 1월 총 3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지금의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초기 강력 대응이 경기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는 길이라고 믿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연준은 인상 사이클 초기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연준의 '응답하라 1994' 실험이 성공할지 여부는 결국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장단기 스프레드 역전·축소와 연준의 경기 자신감
연준이 3월 FOMC에서 금리를 25bp 올린 뒤 적극적인 추가 인상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최근 일부 구간 금리 가 역전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전날(28일) 미국채 30-5년 스프레드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역전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30년이 3.81bp 떨어진 2.5496%, 5년이 2.12bp 상승한 2.5633%를 기록해 5년 레벨이 1.41bp 더 높아졌다.
장단기 금리 역전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10-2는 스프레드는 더욱 축소됐다. 10년 금리가 1.36bp 하락한 2.4633%, 2년이 6.02bp 상승한 2.3361%를 기록해 10-2년 스프레드는 12.72bp로 대폭 축소된 상태다.
통상 장단기 스프레드 축소, 더 나아가 금리 역전 가능성은 경기 침체를 예비하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하지만 연준은 경기와 관련해 장단기 스프레드에 크게 겁 먹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시장은 이런 중앙은행들의 입장을 '긴가민가'하면서 쳐다보고 있다.
금리 스프레드가 역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를 23년 경기침체의 전조로 봐야 할지, 장단기 스프레드의 움직임이 '이번엔 다르다'로 귀결될지 관심이 높아져 있다.
연준은 일단 과거 장단기 스프레드가 줬던 '시그널링 효과'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 연준 자신감 보다는 역사적 경험이 더 믿을 만해
현재 금리가 크게 올라오면서 미국채 10년금리는 중립 기준금리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연준은 최근 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전망을 크게 올리면서도 롱런 금리는 2.4%로 낮춘 바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시장에선 금리 역전의 리스크를 과소평가하는 연준의 이런 자신감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채 10년 금리가 중립기준금리 추정치를 상회한 사례는 2018년이 유일한데 문제는 순서"라며 "당시 10년금리가 중립기준금리 추정치를 상회한 이유는 연준의 추정치가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연준은 2018년 3월과 9월 중립기준금리 추정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번에는 연준이 중립기준금리 추정치를 하향 조정했음에도 10년 금리가 이를 상회하며 이전 중립기준금리 추정치에 수렴했다.
강 연구원은 "‘이번에는 다르다(장단기 스프레드는 틀렸다)’ 가 아니라면 연준이 주장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하향 조정 전 중립기준금리 수준까지 상승한 10년 금리의 추가 상승 여력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채권 학살기의 '위로'가 되는 부분
1994년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전후 시장금리 움직임을 살펴보면,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1993년 9월 초순 5.2%대에서 1994년 11월 중순엔 8% 위로 올랐다.
당시 미국 10년물 금리는 8%를 살짝 넘은 지점에서 고점을 형성한 뒤 1995년엔 5%대로 다시 레벨을 낮춘 바 있다.
지금보다 금리 레벨이 훨씬 높던 시기의 얘기지만, 94년 채권 학살기 동안 10년 금리가 200bp 이상 오른 뒤 다음해엔 200bp 넘게 빠진 것이다.
당시 채권투자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다만 경기 침체가 오지 않더라도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를 '선반영'했다는 측면에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도 한다.
힘든 기간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지만 금리는 이미 많이 뛰었다는 점 때문에 채권의 암흑기가 주구장창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진단도 보인다.
B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채권 학살기에도 보면 금리 급등 뒤 급락기가 도래했다"면서 "지금 금리는 2020년 여름 이후 줄곧 올라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분간 계속해서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이나 국내 시장금리의 선반영 부분을 감안하면 어려운 시절이 한없이 길어질 것 같지는 않다"면서 "무엇보다 어제 금리가 폭등하면서 우리 3년 금리 같은 것도 기준금리 5회 추가 인상을 반영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 변동성에 휩싸인 시장
전날 금리 급등은 손절 여파가 컸다.
단중기 금리가 20bp 넘는 보기 드문 폭등세를 기록하는 등 로스컷으로 인해 시장이 큰 변동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이날은 외국인 선물매수 등으로 가격이 급반등했다. 다만 여전히 변동성이 큰 가운데 금리 시장의 진로는 불투명하다.
C 채권딜러는 "가격이 오늘은 장중 너무 뛰어 당황스럽다. 오전에 증권 손절이 마무리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일단 변동성이 여전히 너무 커 어느 쪽이든 방향을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D 딜러는 "어제 밀린 것을 감안하면 반도 회복 못했다"면서 "3년 금리가 여전히 2.7%다. 기준금리 2.5%를 100% 반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의 대응은 무척 실망스럽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중립금리가 있을 것인데, 어제 금리가 그렇게 폭등했는데도 (단순매입으로) 나서지 않았다"면서 "중립금리가 3%면 안 나서도 되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비판했다.
E 증권사 채권 중개인은 "당국은 나서지 않고 오늘 외국인이 선물을 사면서 가격을 크게 끌어올렸다. 하지만 다시 밀리는 등 상황은 오리무중"이라며 "심리는 여전히 매우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