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한국판 뉴딜 관련 민간분야 유공자와 전문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개최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지만 한국판 뉴딜을 칭송하면서 다음 정부가 계승·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우리가 한국판 뉴딜이라는 방향은 잘 잡았다"면서 "한참 가속도가 붙을 무렵에 정부가 교체되지만, 다음 정부가 이 방향성을 이어받아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의 포장은 바꿀지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 나가도록 다음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차 추경 재원 마련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됐던 내용 중 하나가 한국판 뉴딜의 축소였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한국판 뉴딜 정책 관련 예산을 축소하면서 추경 재원 마련에 나서려는 인수위 측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한국판 뉴딜 최대 비판자 중 한 사람이 당선인의 경제책사
차기 윤석열 정부의 경제수석 후보로 거론되는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그간 한국판 뉴딜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인물이다.
작년 7월 한국판 뉴딜 1주년 때 김 교수는 "기존에 하던 한국판 뉴딜 정책도 특별한 정책이 아니었고 일자리를 돈으로 만드는 것 외에는 가시적인 효과나 성과가 크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식의 예산을 계속해서 늘리게 되면 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좋지 않고 한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김 교수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체적인 얘기는 없이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책사가 됐으며, 지금은 인수위에 참여해 경제수석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2차 추경 얘기가 나오자 김 교수는 다시 한국판 뉴딜을 문제 삼아 주목을 끌었다.
김 교수는 올해 33조원이 넘는 예산이 배분돼 있는 한국판 뉴딜 등을 구조조정하면 적자국채 없이 추경 예산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판 뉴딜, 공공 일자리같은 비효율 예산만 줄여도 추경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 쉽지 않은 예산 구조조정...문 정부 경제수장도 한국판 뉴딜 적극 옹호
히지만 600조원을 넘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발라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많다.
일단 예산의 절반 이상이 복지 예산 등 손대기 어려운 의무지출 예산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 예산 가운데에서도 경직성 경비 등을 감안하면 빼내올 돈이 제한적이고 인건비 역시 손대기 쉽지는 않다.
이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손댈 수 있는 예산은 200조원에 불과하고 여기에서 발라낼 수 있는 예산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또 이미 집행 중인 예산을 줄이면 진행 중인 사업을 중단시켜야 하는 또 다른 비효율 문제가 발생한다.
사업 관련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 예산 집행 부처의 의견 조율하는 일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돈을 얼마를 발라낼 수 있을지 답답해지는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은 전날 한국판 뉴딜을 적극 옹호하고 계승 발전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 사령탑 홍남기 부총리도 거들었다.
홍 부총리도 전날 간담회에 참석해 "한국판 뉴딜은 해외 언론과 IMF 등의 국제기구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 성장동력 선제 대비와 포용성 회복대책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면서 "이제 한국판 뉴딜은 세계 보편적 정책 방향"이라고 했다.
2020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은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는 발언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부총리는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강국, 그린 강국, 포용국가 완성을 위한 미래투자로,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민간·지역이 3인 4각 경주처럼 합심해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 '과반 야당' 되는 민주당 파워는 계속...추경은 해야 하고 뉴딜은 손대기 어렵고
민주당은 최근 인수위가 손실 보상 규모를 보고 받은 후 50조 추경 약속을 뒤집고 시기도 규모도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은 만약 이런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코로나와 고물가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거대 야당으로 변신 준비중인 민주당의 입장은 여전하다. 추경은 빠를수록 좋고 코로나로 인한 손실은 완전 보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인수위는 2차 추경 규모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있도록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추경안 마련에 서두르라고 다그치고 있다.
아울러 4월 국회에서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손실보상법 등 민생 법안을 다음 정부에 맡기지 않고 처리하겠다는 다짐했다.
이런 민주당이 한국판 뉴딜을 칼질하는 데 협조할 지도 의문스럽다. 민주당은 그간 적극적으로 한국판 뉴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옹호해 왔다.
지난 2020년 국민의힘이 한국판 뉴딜을 비판하면서 예산 삭감을 주장할 때 민주당은 "한국판 뉴딜은 민생경제 회복과 미래를 위한 대한민국 대전환의 핵심축"이라며 "한국판 뉴딜의 핵심인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은 디지털화·친환경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는 새로운 산업전략"이라고 했다.
그간 국민의힘이 한국판 뉴딜 예산 삭감을 시도할 때 "세계적 시류에 역행하는 모순적 발상"이라며 민생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이런 입장엔 여전히 변함이 없어 보인다.
■ 돈 만드는 방법은...
인수위는 6일 정부로부터 2차 추경안 편성을 위한 소상공인 손실보상 금액 중간집계 결과를 보고 받았다.
인수위는 정부와 추가적으로 논의해 추경 규모, 손실보상 대상과 방식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당시 추가적인 보완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금액 공개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최종 지원 대상자 선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였다.
이런 가운데 추경 규모가 커질수록 예산 구조조정, 혹은 적자국채 발행의 필요성은 커진다. 국민의힘은 전자에, 민주당은 후자에 무게를 뒀다.
국가결산을 거쳐 발생한 세계잉여금을 보면 일반회계 3.3조원, 특별회계 2.5조원이 있다. 한은 잉여금 초과분 1.4조원도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돈으로는 추경 재원 마련이 어렵다.
이 돈과 세출 구조조정, 적자국채를 섞은 재원이 등장할 수 있다.
1차 추경 16.9조원을 감안해 2차 추경을 30조원 남짓으로 한다면 예산 구조조정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예산 구조조정을 10조원, 20조원 등 어느 수준까지 할 수 있을지 여부 등에 따라 적자국채 규모는 유동적일 수 있다.
채권시장에선 인수위의 적자국채 최소화 노력이 기대감을 준다는 평가도 보인다. 하지만 재원 마련과 관련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추경이 언제든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증권사의 한 딜러는 "미국 금리의 지속적 상승과 손절로 인해 장기, 단기 구간 돌아가면서 채권이 터지고 있다"며 "지금도 입찰 때마다 고전하는데 추경을 위한 적자국채를 많이 잡게되면 시장이 또 다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