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미국 헤드라인 CPI가 예상을 약간 웃돌았으나 근원 CPI는 전망을 밑돌면서 미국채 금리가 단중기 위주로 급락했다.
시장엔 물가 고점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 3월 CPI 결과를 확인한 후 선물시장의 연말 정책금리 전망치는 2.59%에서 2.42%로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은 수십년만에 보는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근원 CPI에서 나타나는 변화 징후에 보다 주목했다.
■ 시장 변화 조짐 찾기에 골몰...헤드라인 보다 근원
미국의 3월 CPI 상승률은 예상치를 상회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 폭등 때문이다.
3월 CPI는 전월대비 1.2%, 전년대비로는 8.5% 각각 상승했다. 전년대비 CPI 상승률은 지난 1981년 12월 이후 약 40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전월대비 1.1%, 8.4% 각각 올랐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월에는 전월대비 0.8%, 전년대비 7.9% 각각 상승한 바 있다.
헤드라인 물가가 예상을 웃도는 수치를 보였으나 근원 CPI는 예상을 밑돌았다.
3월 미국의 근원 CPI는 전월대비 0.3%, 전년대비로는 6.5% 올랐다. 시장에서는 전월대비 0.5%, 전년대비 6.6% 각각 상승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년대비 근원 CPI 상승률은 지난 1982년 8월 이후 최고치를 유지한 것이다. 지난 2월에는 전월대비 0.5%, 전년대비 6.4% 각각 상승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쟁 여파로 물가가 큰 폭으로 뛴 상태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에너지 수출국이며, 밀과 곡식의 주요 공급원이다. 우크라이나도 비옥한 곡창지대를 보유한 세계적인 곡물 생산국이다. 두 나라간의 전쟁은 생필품 공급 우려를 키웠으며, 에너지와 음식료 가격 급등을 견인했다.
금융시장은 근원 물가 흐름에 보다 민감하다. 이제 물가 상승률의 정점을 얘기하는 목소리도 늘어났다.
여전히 인플레 압력은 커 연준의 5월 금리 50bp 인상 전망은 이미 대세가 된 상황이지만, 시장 금리는 이런 우려들을 상당부분 반영 중이다.
일단 미국채 시장엔 적지 않은 기대감이 작용하면서 단중기 구간 위주로 금리가 속락했다.
미국채2년물 금리는 12일 8.18bp 떨어진 2.4095%, 국채5년물은 9.36bp 속락한 2.6927%를 나타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5.21bp 하락한 2.7281%, 국채30년물 수익률은 0.59bp 오른 2.8142%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 강도 둔화 가능성으로 단중기 금리가 속락했으나, 입찰 부진이나 최근 QT 기대 등에 따라 일드 커브가 서는 흐름은 이어졌다.
■ 시장의 3월 인플레 '피크' 기대감...美 통화당국의 계속되는 긴축 의지
3월 물가 급등 흐름은 이어졌지만 근원 CPI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3월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미국채 금리가 단중기 구간에서 속락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투자자들은 연준의 긴축 가속화에 대한 베팅을 축소했다.
미국의 중고차 가격이 3월 3.8% 하락하고 신규 차량 구입 비용은 전달 대비 0.2% 오르는 데 그친 점 등이 감각적으로 물가가 정점에 달했다는 인식을 키웠다.
하지만 당국자들의 물가에 대한 경계감은 여전하며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곡물가격 상승 등 여건도 여전히 낙관하기 힘들다.
조 맨친 민주당 의원은 "연준과 백악관이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3월 CPI 수치가 미국 당국의 대응이 늦었음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멜론의 빈센트 레인하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모두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 여론 조사를 하면 물가 급등이 가장 큰 골칫거리"라며 "연준은 현재 인플레이션 잡기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의 환호는 물가 정점이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었을 뿐 최근의 긴축 강화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여전히 연준이 오는 5월 FOMC 회의에서 50bp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연준 멤버들도 매파 합창을 거두지 않고 있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은 근원 CPI 상승률이 예상했던 것 보다 낮은 수준이었다면서 상승률 둔화가 이어질지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이너드는 그러나 지금은 신속히 금리를 올려야 할 때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중립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서 연준이 신속히 움직일 것"이라며 "연준은 체계적인 긴축 통화정책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이며, 대차대조표 축소를 시작함과 더불어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서 물가 오름세를 완화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마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는 "기준금리가 신속히 중립 수준으로 가야 한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우린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설 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했.
그는 "인플레이션 목표치에 근접할 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금리를 올려야 할 지는 확실치 않지만 연준 관계자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 확신이 있다"고 전했다.
■ CPI 고점 가능성에도 당분간 긴축 압력은 강화...분위기 전환은 시간이 꽤 걸리는 문제
3월 CPI 발표 이후 시장엔 물가의 '피크 아웃' 기대가 확산되는 모습이었다.
CPI 물가가 1981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대부분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으로 인한 것이고 이를 제외한 핵심 소비자물가는 전월대비 0.3%(전망 0.5%) 오르는 데 그친 부분은 물가 우려에 시달린 금융시장에 희망을 선사했다.
하지만 전쟁 여파, 공급망 우려, 각종 수요 압력 등 주변 분위기를 감안하면 물가 상승률에 대해 낙관하기 어려운 데다 물가 상승률이 피크를 치더라도 물가 수준 자체는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감안해야 한다.
아울러 통화당국의 긴축이 계속될 수 밖에 없어 물가 급등 완화에 대한 기대감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3월 소비자물가 발표 이후 물가에 대한 우려는 완화됐지만, 연준 이사들은 성향에 상관없이 매파적 발언을 지속했다"면서 "연준은 5월과 6월 50bp 인상을 포함해 올해 말 기준금리를 2.25~2.50% 수준으로 상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물가 Peak out에 대한 기대가 당분간은 시장금리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국 물가상승률이 고점을 통과하더라도 3분기까지는 여전히 6~7%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가 고점을 찍었을 수 있지만, 물가 상승률이 크게 둔화되는 시각을 찾기는 어렵다. 이런 분위기라면 일단 통화당국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중국 코로나19 확산세와 에너지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연준은 3분기까지는 긴축 기조를 유지할 듯하다"면서 "미국 물가상승률이 고점을 통과하더라도 3분기까지는 여전히 6~7%를 상회하는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연준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나 향후 수개월 적극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상황이 진정되면 올해 말 정도엔 분위기가 꽤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5~6월 연속 빅스텝 가능성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나 연말로 갈수록 물가가 안정적인 둔화세를 지속되고,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정적 여파가 가시화될 경우 금리 인상 스케쥴을 조정할 가능성도 충분히 상존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BEI가 3월 말을 고점으로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고, 짧은 기간 안에 급등한 점을 감안할 때 가계의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도 물가 고점 통과를 확인하고 난 후에는 하락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물가의 고원(高原)은 뽀족하지 않다...각국 대응의 특성도 감안해야
물가 상승률이 고점에서 내려오더라도 단기간에 고물가 상황이 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없다. 이런 측면에 대해선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박성우 DB금투 연구원은 "미국 물가가 정점을 통과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만족스럽게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위험 요인도 여전하다"면서 "미국 CPI 상승률이 정점을 통과하더라도 이를 인플레이션 완화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수준이 만족스러울 만큼 떨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도 매우 울퉁불퉁할 것"이라며 "연준은 당분간 긴축의 고삐를 강하게 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헤드라인 CPI의 전년비 상승률이 8.5%로 2차 오일쇼크 기간인 1981년 1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시장은 '근원적' 요인에 보다 집중하면서 물가 고점 가능성을 논했다. 하지만 물가의 '고원'이 뾰족하기 보다는 평평해서 상당기간 고물가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아울러 각국의 물가 급등 정도가 다른 만큼 이를 감안한 긴축 강도를 고려해야 한다.
이날 뉴질랜드는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한 1.50%로 조정했다. 이 나라 중앙은행 RBNZ가 최근 22년래 가장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RBNZ는 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다수 이코노미스트들이 25bp 인상을 예상할 때 빅스텝으로 경각심을 키운 것이다. 뉴질랜드는 작년 10월부터 4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올린 것이며, 이번 4번째 인상 때는 빅스텝을 밟아 본 것이다. 뉴질랜드는 6% 수준의 물가 상승률에 예민해져 있다.
한국은 내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인상과 동결 의견이 백중세로 부딪히고 있다. 한국의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 위로 올라온 상황에서 한은이 다시 금리인상에 나설지 궁금하다. 투자자들은 인상과 동결 모두 가능하다면서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총재 교체기란 점도 고려되고 있다. 다만 해석은 제각각인 측면도 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공무원 조직인 한국은행에서 총재 없이 금리를 25bp 인상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하지만 다른 딜러는 "원래 반장(총재) 빼고 하는 투표가 재밌는 법이다. 마침 반장도 없으니 매파 금통위원들이 쉬운 금리 인상의 기회를 얻었다"면서 인상에 무게를 뒀다.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