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6일 기준금리 50bp 인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느냐를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아침 프레스센터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과 조찬 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총재는 "우리도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 여부는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 설마 한국이 50bp?..일단 물가 상승폭 가시적 확대 아니면 확률은 낮아
현재 한국은행은 50bp 빅스텝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의 3차례 연속 50bp 금리인상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빅스텝 가능성에 관한 질문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창용 총재는 부총리와 가진 조찬회동 뒤 기자들의 이같은 질문에 "우리나라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꽤 복잡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국내 인플레가 미국 정도는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확률은 낮지만, 물가지표 흐름에 따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정도의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 총재는 성장과 물가에 대해 균형감각을 갖고 살피면서 정책을 펼 것이란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날도 성장, 물가를 중심으로 정책을 하되, 금리차 역전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전히 금리차 문제가 정책결정의 핵심은 아니라는 입장도 부연했다.
아무튼 50bp 인상에 대해 현재 그 정도까지 고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올 물가지표 등을 보면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 여전히 만만치 않은 물가 환경
물가 환경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지난 주말 국제유가는 다시 110달러로 올라왔다.
국제유가는 중국의 봉쇄 완화 기대감, EU의 러시아 원유 금수 가능성에 큰폭을 뛰면서 110달러선으로 올라왔다.
지난 주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장대비 4.36달러(4.1%) 높아진 배럴당 110.49달러를 기록했다.
유가만이 아니라 각종 곡물, 원자재 등의 상황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4월 주춤했던 곡물 가격이 5월 이후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면서 "당분간 먹거리 물가, 특히 곡물 가격의 진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4월 비료 가격은 255pt로 역사상 최고치를 매월 경신했다. 비료 가격이 진정되기 위해서는 국제유가 및 에너지 가격의 하락 전환이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원유 수급 환경 상 에너지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이어 "러-우 전쟁 이후 식량에 대한 금수조치를 실행한 국가들은 3개국에서 16개국으로 증가했으며, 전세계 교역량 내 식량 수출제한 금지 조치가 차지하는 칼로리 비중은 17%로 증가했다"면서 "이는 2008년 식량위기 당시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러-우 전쟁은 에너지 가격 뿐만 아니라 곡물 가격도 상당폭 끌어올린 상황이다. 인도와 같은 주요 소맥 생산국은 수출 금지 조치를 통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려는 중이다.
러-우 전쟁이 공급망에 차질을 가해 각종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린 가운데 중국의 봉쇄가 해제되면 수요 측면에서 물가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각국이 물가 안정에 힘을 쏟고 있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람코의 6월 OSP 인하로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하회한 유가가 반등 시도를 했다"면서 "러-우 사태 장기화 속에 EU의 러시아산 제재 논의가 여전한 유가 하방경직성을 지지했다"고 평가했다.
■ 질문에 따른 원론적 답...경기둔화 우려에도 계속해서 물가지표 민감도는 클 수 밖에
이날 추경호 부총리와 이창용 한은 총재는 조찬회동 후 "최근 우리경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주요국 통화 긴축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고조되고 성장 둔화 가능성도 높아진 위중한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특히, 높은 물가상승세로 인해 민생경제 어려움이 확대되고, 거시경제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은 만큼, 거시경제 상황 전반에 대한 면밀한 점검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소개했다.
당국자들은 경기 둔화 우려까지 감안하지만 여전히 물가 문제를 제1의 민생 과제로 보고 있다.
한은 역시 물가 상승세 둔화에 대한 큰 확신은 없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앞으로 수치를 계속 면밀히 관찰할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인플레 위협이 강하다보니 언론이 50bp 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한은 총재가 그 질문에 따른 일반적인(?) 답변을 했지만 투자자들은 '혹시 인플레가 더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근심을 키웠다.
현재 미국의 CPI 상승률이 전년비 8%대인 반면 한국은 4%대 후반이다. 국내 수치가 미국과 근접도를 높이면 한국의 빅스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번 인상 사이클에서 한국은 100bp, 미국은 75bp를 인상한 상황이다.
미국은 일단 향후 두차례의 금리결정 이벤트에서 50bp씩 금리를 2차례를 올린 뒤 25bp 인상을 이어갈 듯한 모양새다. 미국의 속도에 한국에 어느 정도 부응할지 살펴야 한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 총재도 한미 금리역전이 큰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일단 미국 인상 속도에 긴장할 수 밖에 없다"면서 "무엇보다 물가 급등세가 확대되면 시장이 생각하지 않았던 한국의 '빅스텝'도 전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런 환경이 초래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평가도 보인다. 물론 향후 한미 금리 역전폭 확대는 또다른 고민을 키울 수 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한국의 빅스텝을 예견하려면 7~8%대의 CPI 상승률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보단 미국 금리와 역전된 뒤 역전폭이 커질 때 고민이 커지지 않을까 한다"고 밝혔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가 50bp 인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정도로 짧고 무난하게 답을 할 수 있었지만 '학자적' 접근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는 일각의 평가도 보였다.
C 증권사 딜러는 "이 총재의 발언에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재부는 시장 안정에 방점을 두는데, 학자 출신의 한은 총재는 주저리주저리 원론적인 답을 하면서 가르치려고 하면서 시장을 긴장시켰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국내시장은 계속해서 인플레 지표, 그리고 미국의 인상 강도 등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D 증권사 딜러는 "일단 이달 금통위 25bp 인상을 예상한다. 한은 총재의 발언도 이를 확인시켜주는 정도"라며 "다만 향후 미국이 75bp 올리면 우리도 50bp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채권시장의 문제는 손절의 재발 여부"라며 "발행 물량 줄여준다고 해서 다들 늘렸을 텐데, 손절이 얼마나 나올지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