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방선거일이 끼어있었던 이틀간 미국의 5년물 금리가 20bp 넘게 오르는 등 대외 금리가 급등하자 국내시장도 크게 밀렸다.
국내 채권투자자들 사이엔 다시금 대외 상황이 안정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인식들도 보인다.
동시에 선거일 전 국내시장이 다소 과도하게 밀렸던 점을 감안할 때 이날 가격 낙폭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들도 엿보였다.
■ 채권시장, 경기침체 기대감 키우고 있었는데...다시금 여지없는 인플레 우려의 반격
최근 국내외 채권시장이 경기 둔화 기대감을 키우면서 저가매수나 금리 고점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있었지만, 며칠 사이 국내외 금리는 다시 급등했다.
미국채 금리, 호주 금리, 유럽 금리 등이 크게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 투자자들을 압박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31일 10.81bp, 1일 6.09bp 올라 2.9122%를 기록했다. 국채5년물은 각각 9.64bp, 10.55bp 올라 2.9177%를 나타냈다. 미국채 금리가 이틀간 20bp 내외씩 뛴 것이다.
독일 10년물 금리는 지난 30일 9.25bp 뛴 데 이어 31일과 1일엔 각각 6.66bp, 6.48bp 더 올랐다. 이에 따라 독일 금리는 1.1834%로 올라서 1.2%선을 바라보고 있다.
호주 금리는 31일 10.38bp, 1일 6.72 bp 오른 뒤 2일엔 8bp 넘게 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국내 시장도 다시 주눅이 들었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최근 수급 우려 제거 등으로 저가매수가 힘을 받으려는 순간 해외 쪽에서 금리가 다시 급등했다"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다시 지친다"고 했다.
그는 "시장금리가 다 온 것 같았지만, 해외 시장이 경기를 일으키니 국내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물가압력과 경기침체 우려 동시 작용하나 당장 인플레 제어 '우선'...금리 적극 올린 뒤 필요시 내리면 된다는 관점
투자자들은 인플레 압력과 경기 침체(혹은 상당폭 둔화) 가능성을 동시에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장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더 오르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보니 경기 둔화에 기댄 채권 저가매수가 힘을 받는 데 한계도 나타내고 있다.
연준이나 대형 금융사에서 이런 발언들이 나오면서 긴장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제임스 불라드와 같은 연준 매파는 일단 금리를 적극 인상해 인플레 기대를 막는 게 중요하고, 필요하면 다시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1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해 3.5%까지 올린 후에 내년 후반이나 내후년 다시 인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불라드는 6,7월 50bp 인상을 지지하면서 필요하다면 9월에도 50bp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약 물가가 목표치 수준으로 돌아오면 23년 혹은 24년부터는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연준의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도 1일 "연준은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을 적정 레벨까지 낮추기 위해선 향후 FOMC 회의에서 수 차례에 걸쳐 50bp씩 인상할 필요가 있다"면서 "최근 경기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감소하는 일부 초기 신호를 볼 수 있지만, 연준이 긴축 노력을 줄일 수 있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 더욱 진전된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 역시 당분간 물가중심 통화정책을 강조하면서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릴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이틀전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숙제를 미루면 안 된다'면서 조속히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 외인 선물 매도와 손절...가격 낙폭 과대 인식도
이날은 외국인이 선물 매도 확대를 통해 가격 낙폭을 키웠다.
외국인은 3년 선물을 장중 1만개 이상 순매도 하는 등 매도세를 이어갔다.
해외 금리가 큰폭으로 오른 뒤 외국인이 선물 매도로 대응하자 장중 가격변수가 예상보다 더 밀렸다는 평가들이 엿보였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오늘 장이 크게 밀린 데엔 외국인 선물 매도 영향이 컸다"면서 "해외 금리가 크게 오른 뒤 외국인들이 팔자 시장이 주눅이 들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외인 매도 공세에 저가매수자들의 손절이 나오면서 금리가 장중 오버슈팅으로 나아갔다는 평가도 보였다.
C 증권사 딜러는 "외국인이 선물을 팔면서 저가매수로 대응했던 쪽에서 급하게 손절한 측면이 장중 가격 낙폭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월요일 국내 금리의 오버슈팅 등을 감안할 때 장중 가격 낙폭이 과도했다는 진단도 남아 있다. 이날 10년 선물은 100틱 넘게 밀렸다가 하락폭을 상당폭 축소했다.
D 증권사 딜러는 "오늘 외국인 매도 등으로 좀 심하게 밀리더니, 결국 장중 좀 반등하기도 했다. 다만 이 수준에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 중앙은행들, 경기 둔화 감수하면서 '뒤늦은 숙제'하는 중이란 평가도 많아
지난해 연준, 한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예측에 크게 실패했다.
선진 경제권 가운데엔 한국은행이 작년 여름 먼저 금리를 올리긴 했지만, 고물가 예상보다는 부동산 폭등과 관계가 깊은 금융안정 차원의 대응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뒤늦은 숙제를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일단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 우려를 앞세우고 있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1일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해 1.5%로 상향 조정한 뒤 향후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특히 75bp 인상 가능성까지도 시사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생활비가 30년래 최고 수준이지만 아직 물가가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기까지 단기적으로 더욱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금리를 추가로 더 올려야 한다고 했다.
최근 유로존에서도 빅스텝 가능성 전망이 강화됐다. 유로존의 경기는 상대적으로 미국 등에 비해 더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인플레 압력에 보다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된 것이다. 물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여전히 금리 인상폭을 놓고 의견이 상충돼 있다.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의 홀츠먼 총재는 1일 "최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이 7월 50bp 인상의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금융센터의 박미정·김성택 연구원은 "팬데믹 이후 미국에 비해 경기회복이 지연된 유로존은 금년 상반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발 공급망 차질 등의 직접적 여파로 경기후퇴 압력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연구원들은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에너지 가격 불안에, 유로화 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가세하고 있어 ECB의 통화긴축 가속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 '뒤늦은 숙제'..결국 채권 장기물과 커브 플래트닝으로?
경기 침체 등 리스크가 다가오고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금리인상, QT 등을 통해 코로나 사태 이후 과하 풀었던 유동성을 수속하는 게 급선무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도 강하다.
당장 금리인상이 경기가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 자신할 수 없지만, 인플레 제어에 실패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국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금리 인상, 양적완화 축소 등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1일 "연준이 이번달부터 950억달러 수준의 전례없는 QT를 시작한다"면서 "유동성이 넘쳐나서 연준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다. 투기를 멈추고 집값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연준은 QT를 통해 일부 유동성을 줄여야만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음식료, 연료 등 원자재 가격 급등세마저 작용하고 있으니 경기침체까지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다이먼은 "유가는 배럴당 150~17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유로존 분쟁이 발생해 수급 불일치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경제 허리케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때라고 했다.
허리케인 규모가 클지, 작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튼 지금은 각국이 경기가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고 통화정책 정상화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이 꽤 강하다.
채권투자자들 사이엔 이런 점을 감안해 결국 장기채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진단도 보인다.
E 증권사 딜러는 "대부분 중앙은행들이 물가 예측에 실패하면서 금리인상 타이밍을 놓쳤다. 이러다보니 뒤늦게 매파적으로 발언을 하면서 기대 인플레 차단에 나서고 있다"면서 "빅스텝 얘기가 많은 이유는 그 자체로 중앙은행들이 상황을 오판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금리 인상과 함께 경기침체가 불가피한 만큼 장기 구간 금리가 눌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국내시장에선 30년 발행물량 축소 등으로 30년-10년 스프레드가 20bp 넘는 사상 최대의 역전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