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그간 지난해와 올해 인플레 전망 실패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을 잘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 태도를 제법 바꿨다.
그간 금융시장엔 연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질타가 많았다.
위기를 감지해 미리 펀치볼을 치워야 하는 중앙은행의 본분을 망각한 뒤 뒤늦게 서둘러 금리를 올리다보니 금융시장에 변동성을 일으키고 경기 불확실성까지 키웠다는 비판을 많이 받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연준이 인플레 전망 실패에 이어 경기 전망 실패까지 인정하는 수순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 하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파월이 의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다.
■ 파월 "확실히 침체 가능성 있다"...단중기 중심의 금리 급락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인정하는 답을 했다.
파월 의장은 22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우리가 의도한 결과는 전혀 아니지만, 확실히 경기침체 가능성이 있다"며 "소프트 랜딩은 매우 도전적"이라고 말했다.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리는 데 대단히 전념하고 있다. 인플레 둔화 증가가 보일 때까지 금리인상을 지속할 것"이라며 "금리인상 속도는 향후 경제지표와 경제전망에 따라 이뤄질 것"고 밝혔다.
파월이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강한 긴축을 버틸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스탠스가 꽤 변한 것이다.
다만 파월은 인플레이션 하락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금리인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금융시장, 특히 이자율 시장은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는 경제지표와 경제전망에 달려 있다'고 하자 향후 인상폭에 대한 의문을 제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곧 단기구간 중심의 금리 하락으로 이어졌다.
코스콤 CHECK(3931)에 따르면 22일 미국채10년물 금리는 12.08bp 급락한 3.1608%, 국채30년물 수익률은 8.58bp 떨어진 3.2514%를 기록했다. 국채2년물은 15.94bp 내린 3.0475%, 국채5년물은 13.15bp 하락한 3.2353%를 나타냈다.
■ 여전히 물가 잡는 게 최우선...향후 침체 가능성 언급 늘어나는지도 관심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의 가장 중차대한 과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연준 역시 7월 회의에서 50bp, 혹은 75bp 인상을 약속해 놓은 상황이다. 물가 진정을 자신할 수 없다보니 2연속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연준 인사들도 이런 점을 계속 거론해왔으며, 이런 언급은 이어지고 있다.
찰스 에반스 미국 시카고 연은 총재는 22일 "물가지표가 개선이 안되면 7월 FOMC 회의에서 75bp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다만 100bp 인상하는 식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에반스는 그러나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빠르게 해소하는 것을 지지한다. 현재 인플레이션율을 연준 인플레 목표치인 2%로 낮추기 위해서 향후 수개월에 걸쳐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파월이 침체 가능성을 인정한 만큼 연준 내에서 추가적인 침체 우려 발언이 나올지도 관심이다.
이런 가운데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가 침체 가능성에 힘을 싣는 발언을 보탰다.
하커는 22일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향후 2차례 분기별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면서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반드리 리세션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미국 고용시장은 여전히 타이트하며, 앞으로도 고용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 한은 부총재의 '강도 높은' 물가안정 필요성 강조
이날 아침엔 한국은행 부총재가 물가 안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은이 금리를 계속 올린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부총재가 오랜만에 외부행사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 꽤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21세기 금융비전포럼' 강연에서 "물가불안 심리를 조기에 억제함으로써 거시경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총재는 "높은 물가 오름세와 잠재성장률 수준을 상회하는 경기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현 상황에서 높은 기대 인플레이션 확산 또는 장기화를 방지하는 데 통화정책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미 물가 상방리스크가 우세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월 전망치를 웃돌 것이라고 예고해 놓은 상태다.
한은은 특히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고물가 장기화나 고착화를 우려한다. 물가가 임금인상으로 전이되면서 전체 물가가 더 뛰는 것을 두려워한다.
부총재는 "목표수준을 웃도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인플레 기대심리가 불안해질 경우 임금-물가 상호작용을 통해 높은 물가 오름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최근과 같이 물가 오름세가 가파른 시기엔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정보를 기대에 빠르게 반영하면서 기대 인플레와 물가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걱정했다.
최근 물가 불안에 수요와 공급요인이 중첩돼 있으며 물가오름세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인플레 확산을 매개로 장기화될 위험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주체들의 물가불안심리가 크게 증대되면서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의 안착정도(anchoring)도 저하됐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물가 기조가 장기간 이어진 것과 달리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는 평탄화됐던 필립스 곡선이 정상화되는 조짐"이라고 밝혔다.
부총재는 결론적으로 "인플레이션 불안심리가 증대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지속할 경우 물가상승이 가속화할 수 있다"면서 금리인상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이번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설명회에서 7월 빅스텝 가능성을 확정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금리 인상 폭과 속도는 경기, 환율 등 제반여건을 감안해 결정하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도비시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 파월 침체 가능성 '인정'이 가져다 준 기대감...분위기 개선되자 발행 욕구도 강화
시장에선 파월의 경기침체 가능성 인정으로 금리인상 경로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다만 경기가 망가지더라도 인플레 제어를 못하면 금리를 계속 올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은 부담으로 남는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파월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연준에 상당한 변화가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연준의 1차적 숙제는 인플레 압력을 낮추는 것이며, 파월도 인플레 하락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고 해 정책변화 기대를 키우는 데 한계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통화당국은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금리인상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주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도 같이 보면서 금리인상 폭을 결정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다만 환율 고공행진까지 가세해 물가 안정을 자신하는 일 역시 만만치는 않다. 특히 이날은 달러/원은 장중 1,300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빅피겨이니 만큼 외환당국이 당연히 비정상적 쏠림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아무튼 환율 고공행진은 물가 불안을 더욱 키우는 측면도 있다.
B 증권사 딜러는 "지금은 대통령을 포함해 당국자들이 복합위기라는 말을 쓰는 상황"이라며 "우리 역시 경기가 망가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 향후 금리인상폭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여전히 현재로선 환율 움직임 등을 감안할 때 물가가 최우선인 상황라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은 환율 경계감이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이 매도로 나오고 있어 장이 강해지는 데 한계를 보인고 있다.
또 장이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이자 은행채 발행 욕구가 강화돼 크레딧발 불안 요인이 재차 거론되기도 한다. 이런 구도이다보니 국내에선 단기금리 상승, 장기금리 하락으로 커브가 누웠다.
C 증권사 딜러는 "오늘은 환율이 1,300원으로 올라가면서 외국인이 매도하니 장이 잘 받아내지 못한다"면서 "크레딧이야 지금 상반기 후반이니, 일단 반기말을 넘어가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