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미국 현지시간 22일 파월 연준 의장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수긍한 뒤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이틀만에 20bp 가량 급락했다.
연준이 이전보다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가운데 금융시장의 시각이 어떻게 변할지도 큰 관심사다. 일단 미국 금리 급락 등을 보면 확실히 리세션에 대한 예상은 올라간 모습이다.
파월 의장은 미국 상원 은행위 증언에서 일단 경기 연착륙에 대해 매우 어려운(very challenging) 과제라고 인정했다.
그런 뒤 경기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a recession is a certainly a possibility)라고 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 소프트랜딩과 소프티시랜딩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당초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금리를 올리다 보니 경기 연착륙에 대한 믿음은 시나브로 약화되고 있다.
당초엔 연준이나 시장 모두 소프트 랜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물가 압력과 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소프트 랜딩보다 소프티시 랜딩(softish landing)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위를 점했다.
과거 같으면 소프티시 랜딩도 그냥 소프트 랜딩으로 표현했을 법하지만, 파월 의장이 최근 좀더 세분하면서 이 표현도 꽤 유행하고 있다.
경기 연착륙을 소프트 랜딩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파월은 굳이 소프티시 랜딩이라고 하면서 '다소 울퉁불퉁한, 그러나 꽤 괜찮은 착륙'을 의미한다고 했다.
소프티시 랜딩은 대략 성장률이 잠재수준 이하로 하락하더라도 플러스를 유지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다수 의견이 softish landing 쪽으로 모아졌다. 연준 의장이 FOMC에서 이를 거론했으며, 미국 금융사들도 당초 예상보다 큰 경제성장률 둔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연준은 지난주 6월 FOMC에서 2022~2023년 성장률 전망치로 1.7%를 제시했다. 이는 잠재수준인 1.8%를 밑도는 것이며, 연준은 (침체가 아니라) 소프티시 랜딩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지난달만 하더라도 미국 금융사들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2%대 중후반, 2% 내외 등으로 제시하다가 최근엔 2%대 초중반, 1%대 중반 수준 등으로 낮췄다.
인플레를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판단이 들수록 연준의 강력한 긴축에 따라 경기 둔화폭이 커질 수 있다는 쪽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 하드랜딩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 충격이 보다 클 것이라고 보는 쪽에선 하드 랜딩 가능성을 제기한다.
지금으로부터 크게 멀지 않은 시간에 성장률이 2분기 이상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으로 보는 것이다.
노무라증권을 올해 4분기부터 미국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역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준이 물가 압력을 잡기 위해 강도높은 긴축을 하는 과정에서 경기모멘텀이 둔화되고 결국 역성장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도이치뱅크는 미국의 역성장 시대 도래까지 시간이 좀더 걸리면서 내년 3분기부터 성장률 마이너스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연준이 물가와 고용이라는 이중 맨데이트에 고르게 집중하기 보다는 물가에 방점을 두고 있는 시기다. 따라서 물가 안정에 방점을 둔 통화긴축이 경기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시각은 점점 더 늘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로벌 금융사들이 보는 경기 침체 확률은 높아졌다. 지금은 1년내 경기가 침체할 수 있다는 전망을 40% 가까운 수준까지 제시하는 기관들도 늘어났다.
국제금융센터의 홍서희·김성택 연구원은 "대부분 현지 IB들은 미국 성장률에 대해 잠재수준을 하회하되 역성장은 회피하는 소프티시 랜딩을 전망하고 있다"면서 "아울러 1년내 침체확률은 17~36%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주택, 소매판매, IP 등이 둔화되는 데다 금융여건이 악화된 영향으로 성장률 전망을 내리고 있다"면서 "물가 정점은 2~3분기 8.5% 수준으로 예상하면서 견조한 고용시장, 초과저축, 낮은 재고 등은 경기 하방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본다"고 전했다.
■ 조만간 물가 고점 치고 내려오지 않는다면 침체 확률 더욱 커질 것
성장률 전망이 계속 둔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향후 경기침체 불가피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물가가 2~3분기에 고점을 치고 내려오지 않는다면 연준의 높은 긴축 강도가 유지되면서 경기 침체론이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홍서희·김성택 연구원은 "컨센서스는 경기둔화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성장세는 유지된다는 쪽이나 물가정점 시기가 3분기 이후로 이연될 경우에는 경기침체론이 대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는 물가위험 확대로 최종 정책금리가 4% 이상으로 재평가되면서 금융여건 및 경제심리 악화, 자산가격 조정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내 이자율 투자자들도 미국의 침체 가능성, 그리고 이에 따른 한국의 성장률 둔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중이다.
증권사의 한 딜러는 "미국 경제지표들에서 경기 부진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면서 "물가 상승률이 고점에 가까워진 반면 경기 침체 확률이 높아지고 있어서 최근 글로벌 채권 금리 하락 압력이 커지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여전히 물가 고점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나, 설사 물가가 조만간 고점을 조만간 찍더라도 고원에서 빠르게 내려오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들도 적지 않다.
■ 한국의 랜딩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둔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5월 26일 금통위에서 성장률 전망 하향과 물가상승률 전망치 상향을 발표했다.
당시 한은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2월)에서 4.5%로 1.4%p 상향 조정하고 경제 성장률은 3.0%(2월)에서 2.7%로 0.3%p 하향 조정했다.
이제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2008년 7월에 전망한 2008년 전망 4.8%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렇게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도 상당한 상황이다. 아울러 한국 역시 고물가를 잡는 데 힘을 쏟다보면 성장률 둔화를 감수해야 한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과 6월 소비자물가 6% 전후 수치가 확인되면 한은도 7월 금통위에서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아직 한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은 미국 만큼 세를 넓히진 않았다. 한은 총재 역시 침체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 잠재 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번주 21일 물가설명회에서 "지금 상태는 5월 금통위가 있던 상황에 비해 물가는 좀 더 올라가는 쪽으로 위험도가 높아졌고, 성장률은 미국이 금리를 빨리 올림으로써 미국 경기도 더 빠르게 나빠질 가능성도 생겼고, 중국 상황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나빠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경기는 하방위험이 커졌고 인플레는 상방위험이 커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한 달 전에 비해서"라며 "그래도 현 상태에서 우리가 경기를 파악하기에는, 보통 잠재성장률로 생각하는 2%보다는 올해 성장률이 2% 이상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 정부는 연일 경기에 대해 '엄중한 상황', '비상 상황', '복합위기 상황'이라는 꽤 거친 표현을 구사하면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상대적으로 물가 위험이나 성장률 위험이 미국보다 낮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에따라 금리 인상폭 역시 미국처럼 급하게 확대할 필요성은 적은 편이며, 당장은 한은이 25bp, 50bp 사이에서 물가지표 등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