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전날 정부가 예고했던 대로 전기요금, 가스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원가 상승에 따른 인상 요인, 장기간 공공요금을 묶어놨던 데 따른 정상화 필요성 등으로 다음달부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IT기업을 중심으로 임금마저 들썩거리다 보니 정부는 곤혹스러워졌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공공요금인상을 '용인'한 뒤 전국민이 나서서 물가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는 실정이다.
■ 올해 전기요금 15% 이상 인상...4분기엔 기준연료비 인상 예정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오후 5시 요금인상을 발표했다.
우선 한전은 연료비 조정단가 분기별 조정폭을 연간 조정폭의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3분기 전기요금에 적용할 연동제 단가를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즉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가 5원 인상돼 4인 가구의 월 전기요금 부담은 약 1,535원(월평균 사용량 307kWh 기준) 늘어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기후환경요금·연료비 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분기마다 조정되는 연료비 조정요금이 인상되는 것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전분기 대비 최대 3원, 연간 3원이 상한선이었으나 이번엔 제도를 바꿔 기존의 1년치 최대폭인 5원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정은 작년 4분기 이후 3분기 만의 인상이었으며, 대신 4분기엔 연료비 조정단가가 동결된다.
4분기에는 연료비 조정단가 추가 인상은 어렵지만(상한 기도달), +4.9원/kWh의 기준연료비 인상이 예정돼 있다.
상하한을 무시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요인(실적연료비-기준연료비)은 약 33.6원/kWh이다. 이 수치는 한전이 산정해 정부에 제출한 3분기 조정단가다.
한전이 연료비 요인에 따른 적자를 면하려면 3분기 조정단가를 33.6원 만큼 올려야 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크게 올렸으나 한전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번 결정으로 전기요금은 지난 4월 kWh당 6.9원 오른 데 이어 3개월만에 다시 오른 것이며, 10월에도 추가로 4.9조원 오르게 된다. 이러면 올해 15% 남짓 전기요금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 정책 반작용·전기요금 억제에 대외악재 겹쳐 한층 어려워진 한전...재무구조 개선 한계도
올해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는 이유로는 국제연료가격 급등과 한전의 재무여건 악화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이전 정부가 지나치게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데다 탈원전 정책의 반작용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서울대 주한규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날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출석해 "탈원전에 따라 한전이 원전 대신 값비싼 LNG 발전으로 대체하면서 쌓인 손실만 해도 지난 5년간 11조원에 달했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원전가동률이 크게 낮아졌고 낮아진 원전 가동률을 LNG 발전으로 메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원전가동률은 2006~2011년 평균 91.5%, 2012~2016년 81.6%, 2017~2021년 71.5%로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전기요금을 한 번 밖에 인상하지 않아 원가보전을 위해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때 마침 대외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자 한전의 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결국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7조 7,869억원이라는, 그간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규모의 역대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아울러 이번 인상으로도 한전의 적자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올해 적자를 많으면 30조원까지 감수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일단 요금 정상화라는 큰 발을 뗐으니 한전 입장에선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한전 재무구조 개선 문제는 만만치 않은 숙제가 됐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연간 전력판매량은 약 540TWh이며, ASP가 +1원/kWh 상승한다면 연간 5,400억원, 분기별로 약 1,300억원의 이익 개선이 가능하다"며 "따라서 연료비 조정단가 +5원/kWh 인상이 3분기 영업이익에 미치는 효과는 약 6,500억원"이라고 추정했다.
문 연구원은 "이번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가 향후 이익 전망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며 "2022년 영업적자 컨센서스가 23.1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료비 조정 단가 인상 효과가 미미해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인상이 시작되었다는 점,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요금 인상 필요성이 인정 받았다는 점 등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전은 엄중한 물가 상황까지 감안한 재무구조 개선을 다짐했다.
전날 한전 정승일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그룹사와 합동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매각 가능한 자산을 최대한 발굴해 매각할 것"이라며 "사업구조조정, 긴축경영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해 6조원 이상의 재무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도시가스 요금 인상...정부, 물가상승 감안해 최소화했다는 입장
전날 산업통상자원부는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도 메가줄(MJ·가스 열량단위)당 1.11원 인상한다고 밝혔다.
가구당 월평균 2,220원 정도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인상률은 우선 주택용이 7.0% 오른다. 음식점·구내식당·이미용실·숙박시설·수영장 등에 적용되는 일반용(영업용1)은 7.2%, 목욕탕·쓰레기소각장 등에 적용되는 일반용(영업용2)은 7.7% 인상된다. 서울시 기준 월 3만 1,760원에서 3만 3,980원 오른다.
인상폭은 작년 12월 천연가스 공급규정 개정을 통해 확정된 정산단가 인상분(MJ당 0.67원)과 이번 기준원료비 인상분(MJ당 0.44원)을 반영한 결과다.
정부는 작년말 기준 1조8천억원이던 민수용 미수금이 1분기만에 1.5배 늘어나 4조5천억원으로 증가한 점을 고려해 요금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수입한 LNG 대금 중 요금으로 덜 회수한 금액으로, 실제 LNG 수입단기가 판대단가(요금)보다 큰 경우에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주택용 요금은 MJ당 15.88원에서 1.11원 인상된 16.99원으로, 일반용(영업용1) 요금은 16.60원으로 각각 조정되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요금을 인상하면서 물가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즉 작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 천연가스 현물가, 환율 등이 일제히 급등함에 따라 인상이 불가피했지만 물가상승 효과를 고려해 최소한도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도시가스 요금은 LNG 수입단가에 연동해 산정되는데, 수입단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국제유가(26일 기준)는 전년비 61%, 천연가스 현물가는 141%, 환율은 14% 상승해 요금인상 압력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 조만간 6%대 물가상승률 거론했던 경제부총리...확산되는 임금발 물가압력에 '임금 억제 호소'
지난 일요일 TV에 출연해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경제부총리는 임금발 인플레 악순환 가능성을 크게 우려했다.
결국 경제부총리가 경총을 찾아가 '임금인상 자제 필요성'을 강변하는 상황에 이러렀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날 아침 경총 회장단을 만나 "최근 일부 IT 기업과 대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IT 기업, 대기업 임금 상승이 여타 산업과 기업으로 확산할 조짐 보이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부총리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나 최근 우리 경제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대기업에 임금 인상 억제를 당부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그는 "과도한 임금인상은 고물가를 심화시킨다"면서 "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 인상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확대하고 기업 현장 곳곳에서 일자리 미스매치도 유발한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때에 과하게 임금을 올리면 오히려 전체 경기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는 데다 사회적 갈등마저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총리는 정부가 민생물가 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두면서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 중이지만, 정부 노력만으로는 물가안정에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물가 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경쟁적으로 가격과 임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물가와 임금의 연쇄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해 경제와 사회 전체의 어려움으로 돌아오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가급적 기업에서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가격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주길 각별히 당부한다"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