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물가 연구자들이 우려하는 건 고인플레이션의 '지속성'

2022-09-07 15:32:42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이 다시금 금리 인상 지속 필요성을 시사했다.

한은은 7일 '고인플레이션 지속가능성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긴축에 무게를 실었다.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과 전망모형팀 직원 6명이 물가 동인의 리스크를 점검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원자재 가격 반등 가능성, 수요측 물가압력 지속 등으로 고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5∼6%대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대인플레이션도 4%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안정을 위한 정책대응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은 도출했다.

■ 한은 물가연구자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한은 물가동향팀은 미국 등 주요국 물가상승률이 최근 국제원자재가격 하락,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 경기하방압력 증대 등의 영향으로 올해 하반기중 정점을 기록한 후 점차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하반기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상당폭 하락하면서 고점 통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향후 국제유가 등 원자재가격 반등, 수요측 물가압력 지속,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등으로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물가의 고점 터치 후 하향 안정보다는 고물가 상황의 지속 위험에 무게를 뒀다.

이미 금융시장에선 한은이 조만간 물가에 고점을 찍는다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고물가 지속을 우려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 관련 내러티브도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상태다.

■ 한은 연구자들 "광범위한 물가 상승 속 근원품목 물가 오름세 지속성 높아 우려"

최근 한은 총재가 물가와 관련해 '유가 흐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한은은 지금 공급 요인 안정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 등 공급측 요인뿐 아니라 수요측 압력도 커지면서 근원품목의 물가 기여도가 꾸준히 확대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특히 "개인서비스물가를 중심으로 물가상승세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근원품목(309개, 식료품·에너지 제외 기준) 중 물가상승률이 5%를 웃도는 품목이 빠르게 확대됐다"고 우려했다.

광범위한 물가상승 확산세와 함께 기조적 물가지표도 꾸준히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한은 연구자들은 "중위수물가, 경직적물가 등 상당수 기조적 물가 상승률이 최근에 과거 급등기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후 근원물가의 오름세가 꾸준히 높아진 점에 비추어 볼 때 근원물가가 인플레이션의 지속성 확대를 주로 견인했을 것으로 봤다.

연구자들은 "인플레 지속성 지표를 보더라도 최근 물가 오름세 확대와 함께 지속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며 "근원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이 비근원인플레이션에 비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인플레이션 지속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점도 최근의 지속성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계열 분석 결과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은 고물가 국면에서 지속성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고물가 지속 가능성과 관련해 ①유가 등 원자재가격 추이, ②수요측 물가상승압력의 변화, ③중앙은행의 정책대응 및 ④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 변화 가능성을 중점 점검했다.

이 4가지 요인을 최근 고인플레이션 상황의 지속성과 관련해 키 포인트로 본 것이다.

■ 관점1 "유가, 재차 반등할 가능성 적지 않다"

유가는 지난 6월 이후 상당폭 내려왔다. 글로벌 수요둔화 가능성, 투자자금 유출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런 가운데 보고서는 일단 향후 유가의 상,하방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OPEC+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 감산, 낮은 석유재고 등이 유가 상승요인으로, 글로벌 수요둔화, 이란 핵협상 진전, G7의 러시아산 석유가격 상한제 도입 추진 등이 하락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보고서는 초점을 재급등 가능성 '대비'에 맞췄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지난 6월 이후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크게 줄인 데 이어 최근 독일, 프랑스 등에 대한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서 에너지 수급불안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미국의 천연가스수출 추가 확대는 단기간 내 쉽지 않은 가운데 난방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까지도 천연가스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원유에 대한 대체수요 확대로 국제유가가 재차 반등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원자재 가운데 유가와 함께 식량가격도 언급했다. 국제식량가격은 올해 상반기중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가 이후 곡물을 중심으로 상당폭 하락했다. 우크라이나의 수출재개, 투자자금 유출 등에 주로 기인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식량가격에 대해서 재차 상승할 위험을 강조하는 쪽에 포커스를 뒀다.

보고서는 "식량가격이 지난 2008년보다 이른 시점에 하락세로 전환됐으나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 천연가스가격 강세에 따른 비료가격 상승, 우크라이나 수출 재중단 우려 등의 상방리스크도 여전히 잠재해 있다"고 했다.

■ 관점2 "수요측면 물가 압력 반영하는 근원물가 오름세 상당기간 지속 가능성 있다"

한은 연구자들은 팬데믹 이후 크게 확대됐던 슬랙(slack)이 지난해 말 해소된 가운데 내년에도 잠재수준을 웃도는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수요측 물가압력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슬랙은 주요 생산요소인 노동과 자본(공장, 설비 등)이 수요부족 등으로 유휴상태로 남아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슬랙이 플러스인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인 상태로 물가 오름세가 점차 둔화되고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태로 물가 오름세가 점차 확대된다.

연구자들은 "과거 물가 급등기(1998년, 2008년)와 비교해 보면, 과거에는 정점 이듬해에 수요급감을 야기한 충격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크게 둔화된 반면 이번에는 뚜렷한 수요위축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경기침체 우려로 미국, 유로지역과 같은 주요 선진국에서 GDP갭이 마이너스 전환되거나 마이너스 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GDP갭은 금년 들어 플러스 전환 후 내년에도 플러스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금년 하반기 이후에도 수요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을 반영하는 근원물가의 오름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수요측 물가압력을 나타내는 GDP갭은 일반적으로 기조적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과 연관성이 적지 않다. 팬데믹 이후에는 GDP갭과 근원물가 간 양의 상관관계가 이전에 비해 뚜렷해진 것으로 관찰됐다.

연구자들은 다만 "GDP갭의 인플레이션 영향력을 나타내는 필립스곡선의 기울기는 공급충격의 영향을 통제하고 보면 여전히 낮게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관점3 "금리인상 지속 필요하다. 미국의 70~80년대 사례 보면 알 수 있다"

한은 연구자들은 인플레이션 지속성은 수요측 물가압력과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기대형성방식,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정책금리 조정 폭 및 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금융시장 등에서 많이 거론된 70~80년대의 안이한 물가 대응의 폐해를 거론했다.

연구자들은 "미국이 1970년대~1980년대초 3차례에 걸쳐 경험한 지속적이고 높은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미흡한 물가 대응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고 했다.

1960년대 중반 확장적 정책의 영향으로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미국 물가는 1970년대 공급충격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극적 정책대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름세가 확대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점차 확대되고 임금-물가 악순환이 초래되면서 고인플레이션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을 거론하면서 경기가 우려된다고 물가에 느슨히 대응하다가는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향후 경기하방압력이 커지면서 물가-성장 상충관계(trade-off)가 심화될 경우 정책대응의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물가상승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미흡한 물가 대응(underkill)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고 고인플레이션이 고착될 경우 향후 보다 큰 폭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고 이로 인해 더 큰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물가상승압력이 완화되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압력이 증대되는 상황에서는 긴축기조 강화가 경기에 과도한 부담(overkill)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관점4 "불안정한 기대인플레, 임금 상승과 얽힐 경우 폐해 커진다"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불안정해질 경우 경제주체의 기대형성 행태가 달라지면서 인플레이션 지속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일반적 관점이다.

한은 연구자들도 이런 입장과 함께 한국은행 거시경제모형(BOK-DSGE)을 이용한 분석을 소개했다.

연구자들은 "기대가 불안정한 경우 안정된 경우에 비해 경제충격에 대한 실제 물가상승률의 반응이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임금상승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불안정해지면 물가-임금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연구자들이 33개국 자료를 대상으로 교차패널 벡터자기회귀모형(IP-VAR)을 이용해 물가-임금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선 물가상승률 충격은 기대인플레이션의 안정성 정도와 무관하게 임금상승률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임금상승률 충격은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한 경우 안정된 경우에 비해 물가상승률에 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됐다.

결론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불안정한 시기에 임금상승률 충격에 대한 물가상승률의 반응이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기업이 임금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하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한은은 국내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목표(2%) 부근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안착 정도는 주요 선진국의 평균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가파른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면서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상당폭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에서도 5~6%대의 높은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이 4%대의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안정을 위한 정책대응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물가 상승률, 조만간 정점 지나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리스크 대비 필요성

연구자들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하반기중 정점을 지난 후 점차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요 물가 동인의 리스크를 점검해 본 결과 원자재가격 반등 가능성, 수요측 물가압력 지속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수요측 물가압력 등을 감안할 때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과거 급등기에 비해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구조적 요인에 의한 추세인플레이션의 상승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탄소중립 이행이나 공급망 재편 등이 추세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나 펜데믹 이후 디지털 경제화, 생산성 향상 등 구조적 물가하방요인도 상존해 있어 추세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질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현재 물가 상황을 낙관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웅변했다.

한편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일단 물가가 조만간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했다.

추 부총리는 "물가는 9월, 늦어도 10월에 정점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부총리는 이날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돌발요인이 지금보다 악화되지 않는 한 9월, 10월을 지나면서 물가 상승세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물가 안정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러-우 전쟁 여파와 유럽 가스공급 문제 등 대외적으로 불확실 요인이 많다고 했다.

부총리는 "현재 나라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 고물가 속에 경기 둔화 우려도 커졌다. 소위 말하는 경제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여전히 민생과 물가안정이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라는 입장을 전했다.

[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물가 연구자들이 우려하는 건 고인플레이션의 '지속성'

출처: 한국은행
출처: 한국은행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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