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CPI 발표 시점을 전후해 유명 인사들이 디플레이션을 거론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미국 CPI, 특히 코어CPI가 인플레 압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려준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연준의 긴축강화 전망이 힘을 얻은 상황에서 세상의 주목을 끄는 유명 투자자나 사업가들이 연준을 비판하면서 금리인상이 과도하다는 주장 등을 펼쳤다.
■ 채권왕의 디플레 주장..."가파른 금리인상 효과는 반드시 나타난다"
디플레 가능성과 관련해 금융 투자자들이 가장 눈길을 줄만한 사람은 채권투자업계의 왕손으로 통하던 제프리 건드락 더블라인캐피탈 CEO의 발언이었다.
건드락은 13일 CNBC 인터뷰에서 "나라면 장기 국채를 매수하겠다. 왜냐하면 현재 디플레이션 위험이 지난 2년 기간보다 더욱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건드락은 연준의 과도한 긴축이라는 '실수'에 따라 앞으로 디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으로 봤다.
그는 "연준이 9월 FOMC 회의에서 75bp 인상할 것으로 본다. 다만 개인적으론 25bp 인상을 선호한다"면서 "왜냐하면 연준이 고강도 긴축으로 경제 성장세를 꺾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전 고강도 금리 인상이 미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점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금리 정책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음을 감안할 때 올해 3월부터 이어진 연준의 가파른 금리인상이 효과를 발휘하면 경기는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연준 내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큰 목소리로 인플레를 우려하면서 매파를 자임했던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가 올해 3월 "금리를 3%까지 올려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과도하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당장 다음주가 지나면 미국 정책금리는 3%를 넘어서게 된다.
■ 머스크·캐시우드도 디플레 거론...'고금리가 태생적으로 더 싫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신산업이나 IT 등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도 고금리는 쥐약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런 분야에 있는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금리인상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때가 많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14일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며 연준이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는 트위터 공간에서 '연준이 뭘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들어오자 "0.25%p 인하"라고 짧게 답했다.
머스크는 지난 10일 연준이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디플레이션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머스크뿐만 아니라 아크인베스트먼트 CEO인 캐시 우드도 지난 13일 디플레이션 임박을 주장하며 연준이 실수하는 중이라고 했다.
캐시 우드는 당시 "연준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목적으로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실수를 하고 있다"며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디플레이션"이라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캐시 우드의 '아크 이노베이션펀드(ARKK)'는 올해들어 각각 17%, 55% 하락을 기록 중이다.
캐시 우드는 미국 CPI 급등으로 주가가 폭락할 때 기술주를 대량 저가매수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진실하다는 점을 어필했다. 머스크와 우드는 트위터 공간에서 서로의 '금리인상 반대' 주장을 공유하면서 격려를 보냈다.
하지만 고금리에 고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발언에 큰 무게를 둬선 안 된다는 지적도 보인다.
A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캐시 우드가 한 때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지금 투자수익률은 엉망"이라며 "발언에 의도가 섞일 수 밖에 없는 이런 사람들의 발언은 노이즈"라고 말했다.
■ 레이 달리오 "디플레? 인플레에 대해 아직도 안일한 상황"
최근까지 발표된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이번주 미국 CPI 지표 등에서 보듯이 근원 인플레가 고착화되는 듯한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디플레' 주장자들의 정반대에서 서서 '지금의 인플레를 얕보지 말라'는 경고음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오랜기간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통했던 레이 달리오는 연준이 금리를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높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CEO는 13일 "금리를 4.5~6.0% 범위까지 올려야 한다. 이러한 금리 인상은 개인 신용 성장세를 낮추는 한편 개인 지출을 줄일 것"이라며 "이로 인해 경기는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달리오는 "투자자들이 장기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여전히 너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채권시장 트레이더들은 향후 십년동안 연간 평균 인플레이션율을 2.6%로 전망한다. 내가 추정하기엔 4.5~5.0% 수준이며 만약 경제 충격이 나오면 수치는 더욱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리를 4.5% 수준까지 올리면 주식시장 가격이 약 20% 가량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예상...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지금의 상황
미국 CPI가 발표된 뒤 해외 금융사들의 연방기금금리 전망치는 연말 4.00%, 1분기 4.25%에 맞춰져 있다.
해외 금융사들은 내년 1분기 미국 기준금리가 고점인 4.25%로 인상된 뒤 한동안 유지되다가 내년 4분기에 4%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FOMC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이번 회의의 인상폭에 대한 관심도 크다. 일단 자이언트스텝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노무라와 같은 곳에선 이달 FOMC의 100bp 인상으로 기준금리가 3.50%로 오른 뒤 연말에 4.5%까지 더 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소수의견이다. HSBC는 이달 50bp가 인상으로 기준금리 3.00%를 전망하나, 역시 일반적인 전망은 아니다.
당장 연준은 세 차례 연속 75bp 금리 인상 경로를 밟아 이달 기준금리를 3.25% 수준으로 맞춰놓을 듯하지만, 시장에선 혹시 모를 서프라이즈를 걱정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한은이 올해 남은 2번의 금리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씩 올릴 것이란 예상이 컨센서스다. 다만 환율 고공행진 부담 속에 연준이 울트라스텝을 밟는다면, 한국도 7월에 이어 다시 한번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금리인상폭이 예상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물가, 환율 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당장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준의 스탠스다.
내년 상황은 내년에 맞춰서 적응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사실 2년전 이맘때만 하다라도 연준은 물가를 올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디플레이션 파이터'였다.
22년 9월 FOMC에서 연준의 75bp 인상이 예고돼 있지만, 20년 9월 FOMC 회의에서 연준은 "경기와 자산시장에 우호적인 정책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천명할 정도였다.
연준은 심지어 2020년 10월 도입한 평균물가목표제를 통해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상당기간 넘어도 용인하겠다는 뜻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 정도로 연준은 물가가 오르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던 조직이었다. 당시엔 이같은 정책 툴 도입으로 '최소 2023년까지는 무조건 금리인상 없다'는 전망이 시장 컨센서스를 형성하기도 했다.
또 작년만 하더라도 연준은 물가 상승률 확대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연준은 크게 틀렸으며,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세상이 바뀌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실험한 극단적 통화·재정정책이 인플레 토양을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미래 기술을 둘러싼 미-중 경제전쟁이 오랜 공급망 체계를 무너뜨리면서 각종 비용을 높여 놓았다. 추가적으로 러-우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끼어들었다.
30년 경력의 개인투자자 B씨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짧은 기간의 미래 뿐"이라며 "당장 내년 하반기, 아니 상반기만 하더라도 무슨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먼 시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