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영국의 쓰리쿠션과 첩첩이 쌓여 있는 시장불안 재료

2022-10-06 14:53:09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최근 영국 채권시장이 붕괴되는 듯한 양상이 나타나면서 영란은행은 10월 14일까지 20년물 이상 초장기채 무제한 매입 발표했다. 시장 붕괴에 놀란 중앙은행은 길트채 매각 시작 시점도 10월 31일로 연기했다.

재무부는 고소득자 최고세율 인하 취소 발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미봉책'으로 단기간에 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어려웠다. 영국 시장은 총리의 한 마디에 다시금 흔들리는 등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러스 영국 총리가 5일 감세 의지를 밝히자 길트채 금리가 15bp 넘게 뛰는 등 시장은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 영국의 쓰리쿠션

영국 재무부가 고소득자 최고세율 인하 취소를 발표했지만 이는 감세안의 2~5% 정도만 차지해 재정 건전성 우려를 깔끔히 해소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은 선진국 중 가장 두드러지는 고물가에 재정 상황마저 좋지 않다.

영국 경기는 조만간 침체될 것으로 보여 신용 리스크도 커지는 중이다. 이 경우 파운드화 추가 하락, 길트 금리 급등 등을 재차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영국의 불안은 주변 나라 시장으로 번져가고 있다.

영국의 위기 고조엔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몫을 했다.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시장에 변동성을 선물하는 중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5일 감세안 강행을 고수하며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러스는 "이번 감세안이 이끌어낼 영국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인의 확신에 찬 주장은 영국 국채 금리가 재급등으로 이어졌다.

코스콤CHECK(3931)에 따르면 길트채 10년물 금리는 5일 16.57bp 오른 4.0275%를 기록했다.

영국 길트채 금리가 다시 날뛰자 유로존 맹주 독일 분트채 금리도 급등했다. 분트10년물은 15.59bp 급등한 2.0234%를 기록하면서 2%를 넘어섰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 금리도 다시 영국 금리에 반응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11.99bp 뛴 3.7548%를 기록했다.

이 여파는 쓰리쿠션 효과를 나타내면서 다시 한국 금리의 상승압력으로 작용했다.

■ 정치인의 자신감...정치인 낙관론 비웃는 신평사

트러스 총리는 "언제라도 변화가 생기면 혼란은 발생한다. 모두가 이번 감세안에 호의를 보일 수는 없다"며 "다만 모두는 이번 감세안 덕분에 경제가 성장하고 더욱 좋은 미래를 맞는 등의 수혜를 입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금리가 오르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영국 정부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임금을 늘리는 식으로 금리인상 분을 상쇄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길트채 금리가 급등한 가운데 파운드/달러 환율은 5일 1.28% 급락한 1.1326달러에 거래됐다. 파운드화는 7거래일만에 약세로 전환한 것이다. 다소간 안정을 찾던 영국 금융시장이 다시금 크게 흔들린 것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영국의 대규모 감세안을 감안해 영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의 에릭 아리스피 모랄레스와 그렉 키스 연구원은 "영국이 보상적 수단이나 거시경제 및 공공재정 충격 등에 대한 독립적 평가도 없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이 강한 상황에서 재정과 통화정책 기조의 방향성 차이가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대규모 부양책과 재정 및 통화정책간 방향성 차이 등이 금융시장 심리 및 정책 운영과 관련한 신임도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첩첩이 쌓여 있는 영국 시장 불안 재료

영국은 통화정책 환경, 재정정책 환경 모두 좋지 않은 나라다.

영국 물가 상승률은 10%를 넘고 파운드화는 가치는 쉼없이 흔들리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통화, 재정 정책들은 앞으로도 발표될 때마다 다른 나라 국가들의 큰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시장 변동성에 재차 확대되면 영국 당국은 이달에도 추가 개입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인식도 강하다.

당장 10월 14일 BoE의 초장기채 긴급 매입 종료, 31일 길트채 첫 매각일 도래 재료만으로도 시장은 긴장하고 있다.

통화정책, 재정정책에서 영국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시장은 다시 한번 출렁일 수 있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영국은 물가 우려와 파운드화 약세 압력 완화를 위해 11월 3일 BoE 회의에서 최소 100bp 금리인상 단행이 필요하다"면서 "11월 23일 재무부 중기재무계획에서 부채비율 하향 안정화도 제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통화·재정정책 경로가 금융시장에 다시금 큰 의구심을 보인다면 컨츄리 리스크가 부각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 연구원은 "지금 영국은 정부 정책이 에너지 부담은 줄여줬지만, 모기지 및 회사채 금리가 급등해 이자비용으로 치환되는 상황"이라며 "올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항목들의 물가 상승 압력이 컸는데, 파운드화절하에 따라 수입물가 상승률 확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영국 정부와 BoE가 시장 발작시 개입한다는 전제하에 길트채 10년 금리 레인지를 3.75~4.30%로 제시했다.

모승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영국은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한 11월 100bp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다"며 "특히 금리 상승에 따른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로 영국의 은행들은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금리 인상과 적극 재정의 한계

영국 트러스 내각은 지난 9월 8일 에너지 가격 보증제를 발표한 뒤 23일엔 대규모 감세정책을 내놓았다. 다년에 걸친 확대 재정을 발표한 것이며, 이는 채권금리 폭등으로 이어졌다.

에너지 가격 보증제로 단기적인 물가 고점은 13%에서 11%(10월)로 하향 조정됐으나 BoE는 중장기 물가 전망치는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금융시장은 이런 정책 발표에 대해 당장 금리 인상 속도는 느려질 수 있지만, 터미널 금리 값은 훨씬 높아질 수 있다며 걱정했다.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BoE는 길트채 매각까지 발표했다.

여기에 올해 국채발행 증액까지 합해지면 시장이 소화해야하는 금액은 2,204억 파운드로, 코로나19 첫 해년도(FY2020-21) 1,397억파운드보다 훨씬 큰 상황에 직면했다.

영국이 이처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국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진단들도 적지 않다.

영국 신용위기 현실화 가능성과 관련해선 일단 영국 주요 은행들의 신용도를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영란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에 포함된 7개 은행 중 상위 3개사(Barclays, HSBC, Lloyds)의 경우 전반적으로 양호한 자산건전성(NPL 2% 하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자본완충력(CET1 비율)도 전년동기 대비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보통주 자본의 13~14%에 해당하는 버퍼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손실흡수 능력에 대한 우려는 크게 심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영국 주요 은행들의 자산건전성과 자본 여력이 양호하다고 하더라도, 경제 상황이 나빠 신용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모승규 신금투 연구원은 "중소기업 대출의 16개월 연속 순상환 추세, 전 고점을 돌파한 신용카드 대출 성장률 등은 저신용 차주들로부터 위험이 야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기 하강, 정부의 재정 악화, 저신용 차주들의 부실 우려 등이 은행의 펀더멘탈에 중단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향후 추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 영국 사태 곡해해 정치공세 무기로 쓰는 국내 정치인들

한국은 이번주부터 국감 시즌이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영국 사태를 해석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에게 각종 주문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 사태를 내세워 정치적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영국 감세안으로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면서, 한국도 '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전날 기재부 국감에서 "영국처럼 우리도 초(超)대기업, 초부자 감세 혜택을 추진해 IMF의 경고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편향된 세제 개편을 멈추라"고 다그쳤다.

같은 당 양경숙 의원도 "영국 감세에 대해 IMF는 불평등 심화 경고했고 철회했다. 우리도 법인세 등 부자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영국 사태의 핵심을 재정건전성 문제로 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제기구는 한국 감세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영국 감세와 한국 감세를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추 부총리는 "영국의 혼란은 감세가 아니라 재정건전성이 문제였다"면서 "영국 국채발행 확대와 신용등급 하향을 시장이 걱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6일 국정감사에서 "한국의 건전재정에 대한 믿음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 신용등급을 좋게 유지했다"고 말했다.

자료: NH투자증권
자료: NH투자증권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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