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금융의날(25일) 축사 중인 김주현 금융위원장, 출처: 금융위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채권시장엔 신용채 상황이 단기간에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은 거의 없다.
다만 금융권의 자구노력, 정책당국의 대응 등으로 '언젠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지금은 유동성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포지션을 줄이라고 하니 골치도 아프다"고 말했다.
B 증권사의 한 채권중개인은 "전날 국채 금리가 급락하고 발행량도 줄인다고 했지만 크레딧 시장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황이 안 좋다보니 AAA 등급인 가스공사, 한전 같은 회사들도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파장에 따른 시장 종사자들의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C 증권사 관계자는 "김진태 강원지사의 무지로 인한 해프닝에 우량 공기업들까지 채권시장에서 발행을 못하는 상황이니, 사태 해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 하필 상황 안 좋을 때 터진 강원도 사태
올해는 예상을 능가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으로 크레딧 리스크도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때엔 신용도나 유동성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더욱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힘든 국면에서 신용도가 높은 공사나 은행이 채권을 찍어대니 크레딧 채권 전반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한전채, 은행채, 특수채 등 신용도 높은 채권들이 계속 발행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돈을 구하기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금리 인상과 채권 공급 확대에 더해 이미 큰 손실을 입은 채권투자자들의 매수 여력도 약화된 상황이었다. 여기에 연말이 다가오면서 북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맞물리니 상황이 더욱 상황이 꼬였다.
이처럼 좋지 않은 시기에 지난달 말 강원도가 중도개발공사에 대한 보증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에 불을 당긴 것이다.
■ 어차피 조속한 해결은 힘들어...수요기반 회복까지 시간 필요
채권투자자들은 지난 일요일 정부의 대책 발표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현실적으로 조속한 시장 정상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이나 공사, 은행들의 발행 욕구는 남아 있으나 신용채 수요 회복이 어렵다 보니 결국 정책당국과 금융사 등이 힘을 합쳐서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D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원래 계절적으로 연말까지는 크레딧 시장이 힘들지 않느냐"며 "연말이 지나야 좀 나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북클로징 관점에서 접근을 하니, 뭘 새로 시도하는 곳은 많지 않다"면서 "결국 다들 정책만 바라본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시장이 조금 안정을 찾는다 싶은 모습을 상황 개선으로 오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보인다. 지금은 채권 수요 기반이 허물어진 상황에서 살얼음을 걷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E 운용사의 매니저는 "일요일 안정화 조치가 나온 뒤 어제부터 아주 어웨이 수준의 거래는 좀 붙는 것 같았다"면서 "하지만 수요가 좀 붙는 듯 하니 발행이 다시 쏟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펀드나 증권사 RP북 같이 전통적인 크레딧 수요 기반이 좀 살아나야 정책도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는 먼 얘기"라고 했다.
■ 밑천 드러낸 시장...당국자들 조치 지켜보기
결국 시장이 금융 당국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일요일 50조원 대책에 이어 이번주 금통위에선 적격담보에 은행채를 포함시켜줄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총재는 최근 국감에서 코로나19 사태 당시 선보였던 신용채 매입용 SPV나 무제한 RP 등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이었지만 일단 적격담보 확대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전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채안펀드 20조원이 부족하면 더 늘리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한 모든 조처가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위원장의 채안펀드 확대 가능 발언 후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 사장들과 제2의 채안펀드 등을 논의했다.
유동성 사정이 좋지 않은 증권사 등을 돕는 방안 등이 논의됐으며, 오늘도 관련 회의는 계속된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또 카드사·캐피탈사와 머리를 맞대고 여전채, CP 등 자금조달 상황을 점검했다.
금융위는 회의 뒤 "당국과 금융업권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수시로 소통하면서 시장안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며 "최근 금리상승과 자금시장 변동성으로 인해 유동성과 자산건전성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어 다시금 "시장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한편 시장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시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시장의 채권 운용자들은 시장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는 만큼 당국의 조치, 업계 사장단의 자구 노력 등을 주시하고 있다.
F 증권사 딜러는 "크레딧 불안이 여전해 조속한 시장 안정을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대책들을 지켜보면서 매물 소화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