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채권시장이 신용 경색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외화채에 대한 우려도 더해졌다.
전날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 공시로 인해 안 그래도 어려운 한국물의 고난이 시작되는 전조 아닌가 하는 우려도 보인다.
흥국생명이 일반적인 관행을 벗어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 1일 흥국생명의 공시...콜 행사 안 한다
신종자본증권은 사채만기일을 30년으로 설정하나 만기 연장 횟수 제한이 없어 사실상 만기 없는 영구채권으로 볼 수 있다. 대신 스텝업 조항에 따라 일정시간이 지나면 금리가 올라간다.
그러나 이런 증권엔 콜옵션이 달려 있다. 5년이 지난 뒤 콜 옵션을 행사해 사채를 상환할 수 있게 설계돼 있으며, 투자자와 발행자 모두 콜 시점을 실질만기로 보고 대응해 왔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관행상 당연했던 콜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증권 구조상 흥국생명의 이같은 결정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관행에 도전'하면 흥국과 같은 일을 다른 누군가가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면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물에 대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으며,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1일 흥국생명은 " 9월 7일 본 증권(3억불 외화채)의 발행이 결의됨에 따라 예상 발행 조건 등을 공시했으나, 금융시장 환경 등을 고려해 2022년 10월 31일 발행 결정 취소를 결의하여 이사회 결의일을 발행 결정 결의일에서 취소 결의일로 정정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이 콜 시점을 감안해 매입하는 투자대상물에 대해 발행자가 콜 없이 넘어가버리면 당연히 리스크가 커진다. 일단 흥국이 콜 옵션 행사와 차환을 위한 재발행이라는 관행을 따르지 않음에 따라 우려가 커진 것이다.
■ 흥국, 금융시장 안 좋아 잠정적 발행 연기
흥국생명은 2017년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흥국생명은 5년이 지난 이달 9일 당연히 조기상환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외화채로 3억 달러, 원화채로 1천억원을 조달해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으나 글로벌 발행시장이 어려움을 이어가자 콜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최근 국내 채권시장에 신용 경색이 발생한 상황에서 흥국이 이같은 결정을 하자 시장에선 뒷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국생명은 공시에서 밝힌 것처럼 '금융시장 환경' 때문에 정상적으로 차환할 수 없었다.
이러자 투자자들은 자산 규모 수십조원에 달하는 생보사가 이 정도의 자금 상환을 못해 콜 옵션 행사라는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걱정하기도 한다.
A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흥국생명 사건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좀 과하게 보면 한국물 전반의 신용 스프레드에 확대에 따른 위기의 트리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관행을 어겼으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그냥 그 회사 자체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 외국계 투자자, 한국물 리스크 프리미엄 더 요구할 수 있어..일단 전체 한국물 위기로 평가하는 건 과장
이번 흥국생명 관련 사건은 법적인 부분, 관행적 부분으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일단 한국물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 등은 당연히 감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은행의 한 투자자는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나 코코본드 같은 것들은 대부분이 콜이 있다. 콜 옵션을 발행자가 가지고 있지만 관행상으로 콜을 해 준다"면서 "발행자도 자본요건 충족을 위한 보완자본 차원에서 발행하지만, 유동성을 우리가 제공해 주니 걱정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과서적으로는 발행자가 옵션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한대로 콜을 안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간 관행적으로 유동성 공급 측면에서 신규로 발행하면서 콜옵션을 행사했다.
따라서 일단 이 문제는 콜이 안 되면 신종자본증권 류의 하이브리드 채권에 대한 코스트가 늘어난다는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히 투자계획이나 유동성에 영향을 미치니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국계 투자자는 "흥국생명이 콜을 하지 않으면서 하이브리드에 대한 코스트가 늘어날 수 있다. 그간 5년짜리를 5%에 발행하고 이런 하이브리드 뷰류에 대해선 관행적으로 콜을 하니 5.5% 정도로 금리를 매겼다. 하지만 글로벌 하게 발행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언제 회수할 지 모르는 유동성 리스크가 커졌다고 본다면 이제 리스크 프리미엄은 50bp가 아니라 100bp, 200bp, 300bp 등으로 더 올라갈 수 있다.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국내외 채권시장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런 일을 가지고 부도를 낼 것이란 식으로 분위기를 압박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관행도 관행이지만 법적으로 콜 옵션은 발행사에 있으며, 매수처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투자자는 "글로벌 하게 금리가 올라가고 차환 발행이 여의치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지만, 시장이 보완자본에 대해선 더 큰 위험 보상비용을 요구하고 펀딩 레이트를 요구하는 것이지, 이 이벤트 자체를 한국물의 전반의 문제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 흥국생명의 플레이...일단 시장 심리 한번 더 흔들어
최근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크레딧 채권 경색, 연말 북클로징 등으로 투자자들이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이 일이 한국물의 큰 어려움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B 운용사 매니저는 "시장심리가 안 좋다보니 흥국생명 건을 과도하게 해석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심리에도 영향을 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관행을 이탈하는 것은 당연히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이는 일이고 이 일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봐야 한다.
아울러 일단 이번 이벤트엔 국내외 채권시장 발행 환경이 좋지 않은 점도 큰 영향을 줬다며, 향후 한국 플레이어들이 평판 관리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보인다.
C 보험사의 한 운용본부장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시장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이긴 하다"면서 "다만 역대금 금리 및 스프레드 급등 환경을 고려하면 여유가 없는 집의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동성이 말려 순상환시킬 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차환 조달 환경도 녹녹치 않을 수 있다. 자세한 조건은 모르겠으나 일단 미상환하고 다음에 상환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다"며 "흥국이 혼란한 시장에 다시 돌 하나를 던진 이상한 플레이를 한 것은 맞다"고 했다.
■ 이자 더 물고 다음에 콜...법적 문제 없는 콜 미행사 과장할 필요 없다는 진단도
흥국생명은 최근 아시아 금융시장 거래 위축으로 조달이 어렵게 되자 조기 상환을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흥국이 싱가포르 거래소에 공시한 내용을 보면, 향후 회사의 조치를 가능한 빨리 투자자에게 알릴 계획이다.
이번 신종자본증권의 발행만기는 30년으로 2047년 11월9일이다. 발행사는 조기, 만기 상환에 대한 의무는 없다. 콜 미행사는 부도 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만 콜이 미행사되면서 이 신종자본증권의 금리 조건은 기존 4.475%에서 미국채 5년에 2.472%P를 가산한 6.75% 수준으로 변경된다. 변경된 금리는 5년간 적용되는 조건이다.
즉 당장 현금 확보가 필요 없거나 재투자 기회가 많지 않은 투자자에겐 액면 이자 금액이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하지만 조기상환일에 상환을 예상한 투자자 입장에선 원금 회수가 늦어지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다음 콜 행사일은 23년 5월 9일이다. 이후 6개월 단위로 콜 일정이 도래한다. 따라서 향후 시간이 흐른 뒤의 시장 상황과 흥국생명의 대응을 봐야 한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다음 콜 행사일자의 조기상환은 글로벌 채권시장 위축의 지속 여부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콜 연기를 공시한 뒤 1일자 신종자본증권 가격(액면 100달러)은 99.7달러에서 86.0달러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특수한 시장 환경에서 발생한 이 문제를 매우 특별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유 연구원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경제적 이유로 신종자본증권 콜 행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펀더멘털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신종자본증권 조기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최근엔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2019년 스페인 산탄데르, 2020년 도이치은행, 영국 로이드 은행이 조기 상환을 하지 않은 사례도 있으나 해당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줬을 뿐 여타 채권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 연구원은 다만 "한국의 은행과 보험사가 발생한 신종자본증권은 첫 콜일자를 예상만기로 간주하고 투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그 동안 발행사들도 투자자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자비용을 손해 보더라도 조기 행사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 2009년 콜을 미행사한 우리은행 후순위채도 투자자들의 우려가 확산되자 다음 상환기일 콜을 이행했다"고 덧붙였다.
■ 금융당국, '오해' 막기 위한 노력 다짐
국내 금융당국은 이날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 관련' 입장문을 내고 큰 문제 없음을 강조했다.
금융위는 "그간 금융위‧기재부‧금감원 등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소통해 왔다"며 "흥국생명은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에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채권 자체의 변경이 아닌, 기존 채권에 부여된 권리 행사에 따른 금리조건 등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당국은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런 뒤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는 않는 상황이며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에 있다"며 "금융위는 기재부, 금감원, 흥국생명과 소통하고 있으며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