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0일 "경제 상황이 앞으로 단기간 내에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워낙 세계경제가 안 좋고 기업 등 각 부분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6개월간의 새정부 경제정책을 평가해 보라는 야당 의원 요구엔 평가 대신 "현재 대내외 경제 상황이 굉장히 엄중하다"고 했다.
부총리는 "세계적으로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고강도 긴축으로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으며,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안 좋아 시장 변동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취약한 부분에 문제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날 부총리는 경제 상황과 관련해 '굉장히 안 좋다'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면서 정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총리는 "내년 상반기까지 특히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경제수장의 한국경제의 '암울한 전망'을 토로하는 사이에 야당에선 증권사 사장 출신 의원을 내세워 부총리를 더욱 몰아붙였다.
이 야당 의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레고랜드 논란을 거론하면서 정부 정책 실패를 홍보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 증권사 사장 출신 의원의 끝없는 '김진태 때리기'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낸 뒤 정계에 입문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김진태 사냥꾼'을 자임하고 있다.
홍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위 '레고랜드 사태'를 일으킨 김진태 강원지사를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날 예결위에서 홍 의원은 "김진태 사태 이후 한국이 더 위기에 노출됐다"면서 "그런데 김진태 지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본인은 억울하다고 한다"고 비난했다.
경제부총리가 한국의 어려움이 글로벌 상황 등과 엮여 있다고 설명하자 홍 의원은 "김진태발 위기는 한국 고유의 문제"고 맞받았다.
잘 모르는 강원지사가 사고를 치고 정부 당국자들이 골든 타임을 놓치니 CP금리가 5%를 넘어서고 취약한 금융사 금리가 6%에 도달했다고 했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 취약한 금융사가 6% 이상의 금리를 제공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평가했다.
단 한 사람의 실수가 시장 전반의 금리를 한 단계 더 높이는 등 한국 사회에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는 것이다. 예금금리도 대폭 올랐지만, 돈 빌린 사람들의 대출금리는 더욱 뛰어 많은 사람들에게 고난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김진태가 2,500조원 채권시장에 공포를 선물했다. 예금금리가 6%로 오르면 대출금리는 저기서 200bp 높여 8%로 오른다"면서 "교보, 메리츠, 신영, 한투 등 증권사들이 자금을 못 구해 전단채를 찍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진태와 흥국생명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현재의 금융시장이란 게 내 주장"이라고 했다.
그는 "김진태 사태 후 시장이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흥국생명 건으로 대외신인도 낮아져 장기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더 나아가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김진태 때문에 돈이 안 돈다"고 개탄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50조+a 대책은 '모두의 예상처럼'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김진태 지사가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며 비난했다.
■ 증권사 사장 출신 의원, 정부 경제정책 공격 선봉에
홍 의원은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부재도 문제 삼았다. 한국은행의 대응도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2,500조원 채권시장이 전부 흔들리는 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며 "한국은행더러 SPC에 50조원을 쏘랬더니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기겁을 하더라"라고 했다.
전직 증권사 사장은 국회의원은 변신한 이후 최근 당 내에서 중책을 떠맡았다. 민주당이 이재명 당 대표의 불법 행위 의혹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정부 경제정책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사건 등이 터지면서 정부 공격을 위한 실탄이 마련된 모양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의 '김진태발 금융위기사태 진상조사단'에서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무능한 정부가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홍 의원을 주축으로 한 '김진태발 금융위기사태 진상조사단'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억울해하는 김진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은 "김진태발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국민과 기업, 국가 전체가 피해자인 경제적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진상조사단은 "경제당국이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23일까지 25일간의 골든타임 동안 일상적 모니터링 외에 별도의 대응을 취하지 않았다. 경제당국은 사태의 발단이 된 김진태 강원도지사와도 일절 소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벼랑 끝 금융위기 상황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윤석열 경제팀이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상목 경제수석과 김병환 경제금융비서관은 당연히 경질 대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진상조사단은 "김진태 지사를 엄호하는 국민의힘은 스스로 얼마나 경제에 무능한 정당인지 발 벗고 나서서 선전하는 꼴"이라며 "어떻게든 전 정권을 탓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사태의 핵심은 채무가 아니라 불이행"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국민의힘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논리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책임자를 감싸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야당의 경제 브레인이 된 홍성국 의원은 '김진태+흥국생명' 조합을 통해 정부와 여당의 무능함을 어필하는 데 주력했다.
전날 홍 의원은 "흥국생명 콜옵션 연기 사태로 유동성 위기가 신용위기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섬뜩한 우려마저 나온다"며 "골든타임을 수수방관했던 금융수장들은 이제 해명하는 데 급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정치인 출신 경제수장의 차분한 답변 "PF발 위기 가능성 철저히 대비..IMF 사태에 빗댄 과도한 위기론은 경계"
야당 의원들은 경제정책, 위기 대응 실패 주장 등에 대해 경제관료·정치인 출신 경제부총리는 위기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차분하게 답변했다.
특히 부동산PF와 관련한 문제 제기들이 이어졌다. 금융시장 등에서 언제 어디서 부동산PF발 이벤트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얘기도 도는 가운데 경제수장은 최대한 면밀히 살피는 중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는 "부동산 PF와 관련해 업계 어려움도 노출돼 있어 각 부분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면서 "지금은 유동성 공급 대책도 취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PF 문제가 심화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부동산 값이 수년간 굉장이 올랐고 PF 규모도 굉장히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며 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데는 최근 수년간 집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총리는 "수년간 부동산 급등으로 가계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대출 중 변동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는 데, 이게 대내외 불안한 시기 맞물려 관리의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제1금융권보다 제2금융권에 대해 일각에서 우려를 제기하는 중이어서 면밀히 잘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부총리는 "지금은 24시간 모니터링 체제"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현재 채권시장 불안심리는 제어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금시장 불안 요인 남아 있어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부총리는 과도한 한국 '위기론'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긋는 모습도 보였다.
예컨대 일부 의원이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는 얘기도 나온다'고 하자 "그런 상황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외환보유액에 대해서도 IMF 등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미간 공조에 따른 유동성 가동장치가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FIMA 레포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FIMA 레포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연준에 미국채를 맡기고 달러를 빌릴 수 있는 제도로, 미국 금융기관이 이용하는 스탠딩 레포의 '국제 버전'이다.
■ 낮아진 한국물 CDS 프리미엄과 더 강해진 한국경제 비관론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 옵션을 행사하기로 하면서 최근 한국물 CDS 프리미엄이 축소됐다.
한국 CDS는 흥국의 콜옵션 미행사 공시 전후로 급등락을 반복했다. CDS 프리미엄은 1일 69bp 수준에서 3일엔 75bp로 수준으로 뛴 뒤 콜 행사로 방향을 잡은 7일 오후엔 61bp 수준으로 축소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시중은행이나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가격도 반등했다. 7일 흥국생명 물건은 72달러 수준에서 97.5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반등했다. 흥국이 9일 100달러에 상환하기로 한 결과였다.
다른 국내 금융사 신종자본증권도 동반 상승했으며, 아시아 시장의 다른 나라 영구채 가격이 동반해서 뛰기도 했다.
최근 흥국의 신종자본증권 콜 행사 여부와 관련해 한국물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갔으나 다시 빠르게 정상화된 것이다.
향후 다른 영구채의 콜 행사 등을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당국의 안정 조치 등으로 진정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흥국의 옵션 행사와 관련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물에 대한 우려가 커졌던 이유는 레고랜드 사태 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이 레고랜드 이후 흥국의 콜 미행사 소식을 듣고 과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다만 글로벌 발행 여건은 한국이 어쩔 수 없다. 향후 글로벌 발행시장 안정 여부 등이 중요하다.
국내 회사들의 연말까지 발행이 대략 완료된 가운데 내년 초에 글로벌 발행시장에 출전하는 국내 금융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한은행은 8일 3년만기 4억 호주달러(2.6억달러) 규모의 캥거루 본드를 발행했다고 전했다. 최근 외화채 발행 시장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것이다.
아무튼 정책 당국과 각 금융사 등이 한국물 신용 프리미엄 상승에 경계감을 나타내고 대응한 뒤 CDS 프리미엄은 단기간 급등 뒤 급락을 기록한 셈이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증권사 사장 출신 홍성국 의원이 흥국생명 사태를 아주 심각하게 얘기했지만, 그런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며 "보험사 코코본드 같은 문제까지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 없다는 견해도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CDS 급등 뒤 급락도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과민 반응에 따른 것이었다. 분명 일부에서 위기를 과장하는 측면도 있다"면서 "아무튼 금융당국이 흥국 문제를 빠르게 처리해버려 일단 이 문제는 지나갔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경제수장이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거듭 강조하면서 채권시장의 금리인상 두려움이 누그러졌다는 평가도 보였다.
증권사의 다른 딜러는 "부총리 말도 있었지만 한국 경기 둔화 가능성이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사회 일각에선 부동산PF 우려로 한은이 금리 인상을 일단 멈춰야 한다는 주장까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가 힘을 얻다보니 최근 미래의 기준금리를 낮춰서 생각해 보는 투자자들도 다소 늘었다.
또 다른 딜러는 "그간 채권시장에 롱이 별로 없다보니 최근 외국인이 선물을 사기만 하면 강해졌다"면서 "특히 일부에선 다시 최종 기준금리를 3.5% 정도로 가정하면서 살 만하다는 식의 얘기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물론 환율이 재급등하거나 CPI가 높게 나오면 또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다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롱이 없는 곳에선 허겁지겁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