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SM 서비스업지표가 예상밖의 호조를 보이면서 미국채10년물 금리가 10bp 가량 뛰고 나스닥이 2% 가까이 급락하자 국내 주가지수도 하락한 것이다.
최근 미국 고용지표를 포함해 각종 경제지표들이 예상을 웃도는 수치를 보여주면서 주식,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커지기도 했다.
■ 지금은 'Bad is Good' 시대...미국 지표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은 '안 좋은 게 좋은 시대'다.
많은 투자자들은 미국 지표가 나쁘게 나와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더 올라가지 않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지난주 고용지표가 양호하게 나온 뒤 일부 투자자들은 걱정을 키우고 있다. 아울러 이번주 들어서도 경제지표들이 예상을 웃도는 수치를 보여줬다.
우선 지난주 금요일 미국 노동부는 11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전월보다 26만 3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의 20만 명 증가 전망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특히 당시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월대비 0.6% 올라 예상치(+0.3%)를 크게 웃돌았다. 전년대비 상승률도 5.1%을 기록해 예상치(+4.6%)를 상회했다.
연준이 4번 연속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하는 등 강도높은 긴축을 단행했지만, 임금 상승세 등을 보면 미국 기업들의 신규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고용지표가 나온 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임기시작 후 신규 일자리를 1천만개 넘게 창출했다며 '역사상 어떤 정부보다 일자리를 많이 늘렸다'고 자화자찬할 정도였다.
■ 채권시장과 연준 모두 오판하는 중?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자 미국 내에서도 연준과 금융시장이 오판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들도 흘러나왔다.
현재 시장이 12월 FOMC의 기준금리 50bp 인상과 5% 수준의 최종금리 등을 생각하고 있지만 경제지표는 예상보다 좋고 임금은 생각보다 더 오르고 있어 기준금리를 계획보다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이다.
특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가 이런 주장에 앞장섰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고용지표가 나온 뒤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것이나 연준 인사들이 말하는 수준보다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며 "최종금리 6%가 확실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이고 5%는 확률이 높은 추측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임금이 오름세를 지속하는 것을 보면 인플레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기간을 두고 지속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금리선물 시장이 2023년 5월까지 연방기금금리 5% 전후로 오를 것이란 예상을 나타내고 있지만, 올해 여러차례 경험한 것처럼 또 다시 '금리 전망의 레벨'이 올라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ISM 서비스도 예상 상회...최종금리 전망치 변동여부 촉각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현지시간 5일 11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6.5로 전월보다 2.1포인트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예상치인 53.7을 상회하는 결과다.
최근 고용지표를 포함해 경제지표들이 양호한 수치를 보여주자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짧은 기간, 약한 형태'로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커졌다. 아울러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강화됐다.
내년 국내외 경기 둔화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ISM 지표상 고용이 상승(49.1→51.5)하고 재고수준은 전월보다 낮아져(56.2→53.8) 인플레 압력이 당장 낮아지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예컨대 물가 상승률의 고점을 봤지만, 물가의 고원(高原)이 지속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도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연준이 경제나 물가를 예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지표 결과를 보고 '후행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다시 매파적인 연준을 확인하게 될 것이란 부담도 보인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최근 미국의 제조업, 서비스, 고용 관련 지표가 모두 좋았다"며 "이러면 서머스가 말하는 6%는 아니더라도 5.5% 정도까지는 최종금리 수준이 더 오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FHN파이낸셜의 윌 컴퍼놀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ISM 서비스 보고서가 강한 것으로 해석되면, 미국 경제는 과열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것은 연준이 긴축 강도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 미국 최종금리 상향 리스크...주식·채권 모두 긴장하면서 '국내 고유요인'도 중시
연준이 미국 경제에 대해 예상보다 더 좋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긴축 의지를 재강화할 경우 주식, 채권 시장 모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최근 증권시장의 가격변수가 상당부분 올라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때는 차익실현을 하는 게 낫다는 지적들도 나온다.
B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최근 장이 좋아 산타랠리 기대감도 있었지만 2,500선 위엔 매물도 많고 안착이 쉬워보이진 않았다"며 "미국 지표도 양호하게 나오고 있어 올해 마지막 이벤트 FOMC에 대해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종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밸류에이션 반응만 보면 주식시장은 인플레이션 정점 → 경기둔화 → 연준 긴축 속도조절 → 시장금리 하락 → 펀더멘탈 회복 → 주가 상승 중 여러 단계를 한번에 넘어선 듯 한 모습"이라며 " KOSPI는 9월 이후 낙폭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으며, 12M Fwd P/E는 실적 추정치 하향과 맞물리며 11.3배까지 상승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 FOMC가 긴축 기조를 재강화한다면 환율 상승 등 국내 주식, 채권 등 증권시장에 부정적인 요인도 재강화될 수 있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경제지표 호조에 따른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가능성, 중국 코로나 방역 완화 정책의 실질적 효과에 대한 의구심 등으로 급등했다.
최근 레벨을 크게 낮췄던 달러/원 환율은 이날 장중 20원 넘는 폭등을 보이면서 1,310원선을 훌쩍 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연준의 긴축 재강화 무드 속에 주변국이 금리 인상을 지속한다면, 향후 1차례 25bp 인상 후 인상사이클을 끝내겠다고 조건부 약속을 한(중앙값 기준) 한은이 변심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보인다.
이날 호주 중앙은행은 시장 전망대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한 3.10%로 상향 조정했다. RBA는 지난 5월 기준금리 25bp 인상을 시작으로 6월, 7월, 8월, 9월 각각 50bp 인상을 단행했다. 이후 10월, 11월, 12월 각각 25bp를 인상해 최근 8차례 통화정책 회의에서 총 300bp를 인상했다. 호주는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호주 물가가 연말 정도 8% 전후한 시점에서 정점을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대외 요인과 함께 한국 특수 요인도 감안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취약성 등을 감안할 때 여기서 한번 올린 기준금리 수준 3.5%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으며, 현재의 국채 금리는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보인다.
일단 국내 채권시장은 연준 긴축 재강화 가능성 등 대외 분위기에 대한 경계감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특유의 수급과 경제 상황 등도 상당 부분 고려하는 중이다.
C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금리는 미국과 달리 기준금리와 스프레드도 있다. 또 금리 인상 종료도 미국보다 빠를 것으로 보이니, 연준의 긴축 강화 가능성에도 잘 밀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