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한국은행이 연말시즌을 맞아 '만일의 신용 사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법정보고서인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공표한 뒤 RP 매입 확대를 공언했다.
시중 유동성을 풍족히 공급해 북클로징 상황에서의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 한은, 연말 자금 넘기는 데 주력...RP매입 규모 확대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8일 "RP매입 규모를 6조원 이상으로 확대 실시하고 리스크를 고려해 기간과 횟수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재보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 자리에서 "다음주부터 RP매입을 확대 실시할 계획"이라며 "최근 단기금리 시장 어려움 지속되고 연말 금융기관 자금 이동이 확대로 불확실성이 큰데 따른 조치"라고 했다.
한은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인 10월말 RP 6조원 매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 내 리스크를 고려해 규모를 더욱 확대하고 1개월물로 기간도 늘릴 것이라고 했다. 횟수는 다음주부터 두세 차례로 보고 있다.
아울러 사모 은행채를 적격담보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한은법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따라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 부총재보는 빠르면 올해 안에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재보는 "최근 CP시장 상황이 어렵다보니 금리차가 나는 것 같은데, 통정매매 부분은 구체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 없다"면서 "10월에 RP 14일물 매입에서 2.6조원이 낙찰됐다. 이 2.6조원을 포함해서 6조원보다 조금더 큰 규모로 RP 매입을 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RP 만기를 연말을 넘길 수 있도록 늘리고 횟수도 늘리면서 연말 요인, 잠재된 단기금리 시장 리스크를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 한은의 적극적 시장안정 조치
한국은행은 단기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지자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나섰다. 자금시장 불안이 채권시장으로 번지면서 11월 1일부터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한은은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및 공개시장운영 RP매매 대상증권을 3개월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차액결제 이행용 담보증권 제공비율의 단계적 인상 계획을 3개월 순연했다.
단기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정책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증권사, 증권금융 등 한국은행 RP매매 대상기관에 대하여 RP매입을 한시적으로 실시했다.
이후 연말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우려 확산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1월 28일엔 채권시장안정펀드 출자금융기관에 대해 최대 2.5조원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9월말 이후 강원도 PF-ABCP 관련 이슈로 CP 시장의 신용 경계감이 높아지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결국 금융당국과 한은이 동시에 나섰던 것이며, 지금은 상당부분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아직 안심하지는 않고 있다.
한은은 "CP금리가 일련의 시장안정 대책 이후 상승폭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있으나 높은 신용 경계감이 이어지면서 5%대를 상회했다"며 "이는 투자심리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MMF, 증권사 특정금전신탁 등 주요 투자주체로부터 자금이 유출되면서 이들의 매수여력이 축소된 점에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당국의 조치, 국고채 금리의 하향 안정 등으로 최근 크레딧 채권 금리도 상당부분 내려왔다. 다만 국고채 금리 하락 속도를 크레딧물 금리가 따라잡지 못해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되는 양상을 띄었다.
한은은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와 관련해 "신용채권 금리는 국고채 금리 하락을 후행적으로 반영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대책 발표 이후에도 부동산 PF 관련 우려 등으로 높은 신용 경계감이 지속되고 있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CP 발행시장에선 강원도 PF-ABCP 관련 이슈와 관련성이 높은 증권사 발행 CP, PF-ABCP를 중심으로 부진이 이어졌다.
11월 들어 일반기업, 여전사 CP의 순발행이 일부 공기업과 카드사 위주로 확대됐으나 증권사 CP는 투자부진 등으로 소폭의 순발행에 그쳤다. 정기예금 ABCP가 큰 폭 순상환된 가운데 PF-ABCP의 순상환 기조가 이어졌다. 다만 순상환되고 있는 증권사 CP 및 PF-ABCP의 경우에도 발행금리 상승세는 다소 주춤해졌다.
한은은 크레딧 시장의 추가 안정을 자신하면서도 리스크 요인이 상존해 있다는 점을 주의하고 있다.
한은은 "향후 국내 CP·신용채권 시장은 시장안정 대책의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겠으나 국제금융시장의 높은 불확실성, 부동산 PF 부실화 및 연말 자금수급 악화 가능성 등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리스크 요인의 전개 양상과 이에 따른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나가면서 필요시 적절한 시장안정화 대책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다만 "최근 시장불안의 기저에는 그동안 저금리 기조 하에서 비은행부문을 중심으로 금융기관들이 단기 자금을 조달해 부동산 등 특정부문에 대한 레버리지 투자를 지속하는 등 과도한 리스크 추구행위가 자리하고 있다"면서 "이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한은
■ 섹터별 온도차 있지만 최근 신용채 시장 크게 개선
최근 신용채 시장도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개선됐다. 아울러 최근 국고채 금리가 급락한 뒤 우량 신용채 중심으로 자금이 모여들었다.
다만 캐피탈채는 오버 30bp에 팔자가 나오는 등 여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우량 신용채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상당폭 개선됐으나 소외된 영역들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즉 공사채·특수채 등과 회사채·여전채 섹터는 차이가 있다. 아울러 증권사 CP나 PF-ABCP 쪽에선 차환 어려움과 함께 경계감도 이어지고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주엔 공사채, 특은채 등이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캐피탈 등을 빼면 전체적으로 크레딧 스프레드를 더 좁혀가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 경기와 물가 상승세 둔화 흐름...향후 한은의 금리정책 전환 가능성은?
한은은 이날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성장과 물가의 동시 둔화를 거론했다.
대내외 금리인상과 대외여건 악화 등으로 투자, 수출 등을 중심으로 성장세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한은은 "경기선행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재고-출하 순환도 상에서도 경기가 둔화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물가 역시 8월 이후 상승세가 완만해졌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풀지는 않고 있다.
한은은 "최근 물가 오름세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물가상방압력 요인을 고려할 때 당분간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한은은 "경제주체들의 높아진 물가인식이 임금 등을 매개로 물가 오름세를 확대·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견조한 고용상황 등을 고려할 때 높은 물가 오름세가 시차를 두고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면서 물가에 대한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간의 기대인플레이션 상승도 인건비 비중이 높은 서비스 부문을 통해 기조적 물가의 상방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한은은 물가와 성장 모두 둔화된다는 점을 거론했으나 '당분간 긴축 기조 지속' 입장은 유지했다.
한은은 "우리경제에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지만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경우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운용하는 것이 중·장기 경제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금리인상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도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현재와 같이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가운데 물가의 목표수준으로의 복귀 시기, 경로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는 긴축적 정책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거시경제모형을 활용한 분석 결과에서도 물가상승·경기둔화가 동반되는 상황에서 물가에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중·장기 시계에서 물가와 성장이 정상수준(steady state)으로 빠르게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은이 내년 중 통화정책 스탠스 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내년 초까지 5% 정도의 물가 상승률이 나타날 것으로 보지만, 시간이 좀더 흘러 보다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면 통화당국의 입장도 달라질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아니지만 내년 물가상승률이 빠르게 둔화되고 경기가 더욱 나빠지면 한은의 스탠스 변화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은은 "물가의 둔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기대인플레이션도 목표수준을 향해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는 가운데 주요국 경기둔화에 따른 수출 감소, 금리 상승과 구매력 저하에 따른 소비 회복세 둔화 등의 영향으로 성장의 하방압력이 빠르게 확대될 경우 적절히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