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주상영 금통위원 이임사 "물가안정과 성장,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 상충관계 첨예화돼"

2023-04-20 14:17:19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주상영 금통위원 이임사(2023.4.20.)

저의 재임 기간은 전 인류가 곤경에 처한 시기와 겹쳤습니다.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의 팬데믹을 맞아 경제활동이 심하게 위축되었고, 백신 보급 및 정책 대응에 의한 회복 과정에서는 1970년대 이후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습니다. 현재로서는 보건위기 극복은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의 회복과 정상화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여전히 대내외적 불안 요인이 잠재해 있는 상태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 책무로 삼아야 하되, 안정적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금융부문의 안정에도 기여해야 합니다. 퇴임하는 즈음, 물가안정과 성장,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의 (단기적) 상충관계가 첨예화된 것으로 보여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길게 말씀드리기보다는, 팬데믹 기간의 물가상승 과정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소견에 대해 간략하게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거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현상인데, 팬데믹 초기 물가상승을 촉발한 주요인은 감염 확산에 의한 공급의 부족과 차질이었습니다. 한편, 이와 동시에 수요 측면에서는 부문간 수요 이동(demand shift)이 발생하였습니다. 서비스 소비가 막히자 재화 소비로 수요가 이동했고, 재화 부문에서는 비내구재에서 내구재로, 서비스 부문에서는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수요가 이동했습니다. 공급 차질과 수요 이동, 이 두 가지 충격은 팬데믹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었습니다.

각국은 예기치 못한 경제·보건위기를 맞아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실시했고, 이는 수요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신 보급, 사회적 거리두기 등 보건 관련 조치들과 무역의존도, 재정·통화정책의 규모 등 나라마다 다른 경제여건과 대응 강도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인플레이션 가속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팬데믹 기간 중의 인플레이션이 과거와 차별화된 모습은, 특정 부문에서의 공급 차질로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다른 부문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연쇄적 가격 상승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부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의 경직성이 작동하여 경제 전반의 인플레이션이 제어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물가에 영향을 주었지만, 팬데믹 기간의 이례적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단순히 총수요·총공급의 총량 개념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고, 그렇다면 정책 대응의 방향이나 강도에 있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을 재직 내내 했습니다. 뚜렷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좀 더 관찰하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제 저는 학교로 돌아갑니다. 지난 3년간 새롭고 귀중한 경험을 했고, 훌륭한 이코노미스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다만, 재임 기간 중 거리두기 정책으로 충분히 교류하지 못한 게 계속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과의 인연과 만남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일이 오늘 이후 제 일상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 개인은 학교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소프트랜딩하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만, 그간의 정책 대응과 축적한 노우하우를 활용하면 우리 경제도 소프트랜딩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총재님과 금통위원님들, 여러 임직원 여러분의 지혜를 믿고 또 한국인의 저력을 믿기 때문에 큰 걱정 하지 않고 떠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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