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신한투자증권은 17일 "미국의 공급망 재편은 밸류체인 장악과 시장 근접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현재 전략산업 중심으로 글로벌 밸류 체인을 재편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국 중심주의와 프렌드쇼어링 개념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첨단기술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졌다. 공급망 재편도 이런 관점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하건형 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은 전략산업(첨단산업)과 비전략산업(기타산업)을 구분해 재편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이 주도한 프렌드쇼어링을 전면적으로 펼치기엔 우방의 개념이 모호하다"고 밝혔다.
우방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치적 비용도 크다고 평가했다. 프렌드쇼어링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효율성(인건비 및 운송비 증가)으로 인한 경제적 후생 악화까지 감내하기엔 부담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정책 효율성 및 효과성 측면에서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프렌드쇼어링 적용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
하 연구원은 "전략산업의 경우 미국과 중국의 밸류체인 장악도와 시장 근접도에 따라 공급망의 구조가 품목별로 차이가 나타날 것"이라며 "미국이 밸류체인을 장악할 경우 중국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기술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 내 공급망 고도화를 제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건은 시장 근접도라고 밝혔다.
중국보다 경쟁력을 확보해 중국 시장 진입이 가능할 경우 공급망은 중국 근처의 동아시아에 형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풀이했다.
하 연구원은 "동아시아는 기존에 중국 근처로 발달된 공급망을 이용할 수 있어 생산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미국 우호 진영으로 분류돼 미국의 기술수출 통제 제한에도 자유롭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기술력을 내세워, 중국은 자원확보를 통해 전략을 펼치겠으며 밸류체인 장악도와 시장 근접에 따라 공급망이 재편될 것"이라며 "반도체와 바이오의약품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장악하고 이차전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첨단산업마다 미래 지형 변화의 핵심 동인은 다르다.
하 연구원은 반도체는 지정학(국제정치)이 가장 중요하며 미래차와 바이오는 기술(공급) 수준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반도체에 비해 미래차가 수요(시장)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풀이했다.
한국의 대표 먹거리인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파운드리는 대만, IDM(종합반도체)과 팹리스는 미국이 핵심이라고 했다.
중국은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장악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중국은 산업 고도화 과정에서 반도체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기술력이 낮아 고기술 반도체는 대외 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시장 수요는 미국과 유럽 등과 비등하다.
하 연구원은 "반도체는 미국이 밸류체인을 장악한 만큼 중국이 공급망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려우나 중국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관점에서 중국 근처에서 공급망 형성 가능성이 우세하다"고 밝혔다.
일부 선진국 수요 대응을 위해 선진국 내 공장 증설 등이 진행될 수 있겠으나 아시아에 비해 약 20~30%가 높은 생산 비용을 감안할 때 중심 밸류체인이 되기보다는 보완적 개념의 공급망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이차전지의 경우 중국이 R&D 설계부터 조달, 생산, 수요까지 모두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일본이 생산 단계에서 2~3위를 점하고 있으며 미국이 4위의 경쟁우위를 지니고 있다.
하 연구원은 그러나 "이차전지는 미국 대비 중국이 공급망 지배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 재편을 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중국이 우세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를 확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일본 등 제3국의 입장에서는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우나 시장 측면에서 중국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중국 대비 경쟁 우위를 삼을 수 없어 시장 공략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대중국 이차전지 무역수지는 적자로 전환돼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결국 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과 유럽 등 시장 근처로 공급망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여전히 중국이 공급망 핵심지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핵심 공급망이 발달되고 주요 시장에는 허브 공급망 조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차전지는 중국이 조달 시장에서 압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 병행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원을 보유한 자원부국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 연구원은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조달을 위한 공급망 구조가 발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기술력이 중요하다. 현재 R&D/설계 및 CDMO(위탁 개발 및 대량생산), CRO(위탁 임상시험) 모두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기술 블록화가 나타나고 있으나 일부 위탁 임상시험에서만 중국의 영향력이 확인될 뿐 대부분은 서방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 연구원은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밸류체인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비우방국은 배제될 가능성이 우세하다"며 "다만 수요 측면에서 미국 시장이 이미 확대된 가운데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시장 규모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신흥 시장 수요 대응을 위한 공급망이 중국과 인도 주변국에서 발달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 FDA와 EU EMA 등 규제기관의 철저한 관리감독 인증이 필요해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신흥국들의 진입과 추격이 어렵다"며 "결국 대안은 대량생산기술을 확보한 동아시아가 위탁개발생산(CDMO)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