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은 파월이 시장 기대감을 어느 정도 통제할지를 놓고 긴장했으나 파월은 예상보다 상당히 도비시한 면모를 보이면서 변신했다.
미국 2년 국채 금리가 30bp나 폭락한 것은 이번 이벤트가 서프라이즈였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 금리 폭락을 보면서 국내 국고채 금리도 기준금리를 대폭 하락했다. 기준금리(3.5%) 위에 있던 국고10년 금리도 3.3%대 초반 수준으로 급락했다.
■ 파월의 '시장 기대감 내버려두기'
FOMC는 13일 기준금리를 3차례 연속으로 동결한 뒤 내년 3회 인하를 예고했다.
이틀간 이어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는 만장일치로 현행 5.25∼5.50%로 동결됐으며, 성명서는 경기 둔화와 인플레 완화에 무게를 싣는 언급을 내놓았다.
FOMC 서명서는 "최근 경제지표는 성장이 3분기의 강한 속도에서 둔화됐음을 시사한다"면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완화됐다"고 밝혔다.
인플레이션을 두고 시장에선 여전히 높은, 그리고 경직적인 모습을 보이는 근원 물가 등을 근거로 파월이 다시 '군기'를 잡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파월은 고물가 경계감을 유지시키는 대신 '인플레 둔화 흐름'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FOMC는 별도로 발표한 금리 점도표를 통해 내년 최종 금리 수준을 4.6%로 제시했다. 이는 이전(5.1%)보다 50bp 낮춘 것이다.
내년에 3차례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며, 내후년엔 4차례 금리인하를 예고했다.
파월은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가 이번 긴축 국면에서 최고점에 도달했거나 근접한 것 같다"면서 "연준의 인플레이션 억제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완화세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성명서, 점도표, 파월 발언 모두 시장 예상보다 도비시한 모습을 나타내자 국채2년물 금리는 30bp 폭락했다. 지난 3월 SVB 붕괴 이후 처음보는 금리 급락세가 만들어진 것이다.
■ 연준 PIVOT에 관심...한은도 인하 기대감 강화 예상
FOMC는 사실상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를 선언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시장 참가자 다수가 추가 인상은 물 건너 갔다고 보던 상황이었지만, 파월은 금리인하 시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파월은 과도한 기대감을 경계하는 발언도 하긴 했지만, FOMC와 자신의 발언으로 이미 대세가 결정돼버렸기 때문에 그 발언 영향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정책결정문 상에 '추가 금리인상의 정도를 결정함에 있어'라는 표현에 'any'를 추가한 점 등 표현 수정도 금리인하 기대감을 부풀렸다. 파월은 금리가 정점이거나 정점에 가까워졌다고 판단해 'any'를 추가했다고 언급했다.
성명서와 파월 발언 등이 도비시해졌고 경제지표에 대한 전망의 하향 조정도 금리 하락에 힘을 실어줬다.
파월이 필요시 추가 긴축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으나 시장은 의미없는 수사(修辭)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점도표가 내년 3번의 인하를 제시하자 시장은 실제론 4번 이상이 가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 등을 내놓았다.
연준이 '금리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알린 만큼 피벗(PIVOT) 시점이 계속해서 큰 관심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행도 도비시한 FOMC를 확인한 뒤 인하 기대감이 더 강해질 것으로 봤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지난 FOMC 이후 미국의 물가지표 둔화, 연준 인사들의 도비시한 발언 등으로 미 국채금리가 상당폭 하락하는 등 시장에서 정책기조 전환 기대가 형성됐다"면서 "이번 FOMC 결과로 이러한 시장 기대가 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 부총재는 "앞으로도 연준 통화정책 운용에 대한 관심이 금리인하 시점에 맞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과정에서 금융·외환 시장의 변동성이 수시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미국 물가·경기 흐름과 통화정책 기조 변화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경제,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잘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연준이 이르면 내년 3월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연구원은 "내년 1월 2%대 헤드라인 CPI, 2분기 2%대 근원 CPI 도달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실질금리의 추가 긴축 억제를 위한 명목금리 하향 조정 압력이 강해질 것이며, 인플레 완화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연준 금리 인하폭은 현재 전망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 급락한 국내 시장금리...연중 최저치 수준은
코스콤 CHECK(3931)에 따르면 13일 미국채10년물 금리는 17.85bp 급락한 4.0230%, 국채30년물 수익률은 13.29bp 떨어진 4.1769%를 나타냈다.
국채2년물은 29.8bp 폭락한 4.4328%, 국채5년물은 24.93bp 폭락한 3.9686%를 기록했다.
국내 금리들은 미국을 추종해 장 초반부터 20bp 내외의 급락세를 나타냈다.
장 초반 10년 국채선물은 '투빅' 이상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준금리(3.5%) 전후에 포진하면서 FOMC를 대기했던 국고채 금리들은 장 초반 3.2~3.3% 내외에 자리를 잡았다.
한은은 올해 1월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3.5%에 맞춘 뒤 줄곧 동결해왔다. 시장은 연초 금리 인하 기대감을 키우면서 뜀박질을 해 본 적이 있다.
최종호가수익률 기준으로 보면 올해 2월 3일 국고채 금리들은 대체로 최저 수준을 찍었다.
당시 국고3년 금리는 3.11%, 5년은 3.096%, 10년은 3.148%를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연중 저점이나 인하 기대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금리 하단을 가늠해 보고 있다.
■ 금리 연저점, 빅피겨 트라이 거론하는 사람들
국고채 금리와 기준금리 역전폭이 커졌지만 투자자들은 상황이 바뀌었음을 인정하면서 접근하는 중이다.
A 증권사의 한 채권중개인은 "국고3년 3%, 국고10년 3.1% 등을 얘기하고 모습도 보인다"면서 "인하로 직진하고 싶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B 채권 중개인은 "좀더 달아오르면 연중 금리 저점까지 열어둬야 할 것같은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C 증권사의 한 딜러는 "연준 이벤트로 많은 게 바뀌었으니 결국 국고3년이 3%까지 가보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빅 피겨나 연중 저점 트라이 가능성 등을 거론했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전저점 트라이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면서 "일단 국고3년 3.10%, 10년 3.2%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외국인들은 그 동안 롱을 유지해 왔으니, 차익실현을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E 운용사 매니저는 "올해 1분기 경기 둔화 예상과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한창 커졌을 때 국고3년 금리가 3.10%, 국고10년 3.15% 정도에서 저점을 형성됐던 일을 생각하면 그 수준까지는 무난하게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금리 레벨이 내려온 만큼 여기서부터 큰 욕심을 내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도 보인다. 수급적으로 금리가 크게 뛰기는 어렵지만 금리 레벨이 박스 하단에 상당히 다가섰다는 진단도 보인다.
F 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1분기 때 지금 레벨에서 머물렀으니 금리 하단은 대략 지금 수준과 큰 차이 없지 않을까 한다"면서 "미국 금리는 10년 기준으로 8월 수준이어서 좀 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는 상대적으로 미국 반영 강도가 좀 센 편이다. 채권을 못 사고 '밀사'를 기다리던 선수들이 급한 국면이어서 그들이 대충 채권을 채울 때까지는 크게 밀리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