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스위스중앙은행(SNB)이 21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25bp 낮췄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 결정이었다.
올해 주요 선진국들의 금리 인하를 앞두고 스위스가 먼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조만간 본격적인 글로벌 금리 인하 사이클이 작동할 것이란 기대도 보인다.
브라질 등에서 먼저 정책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선진국 중에선 스위스가 금리 인하에 앞장선 셈이다.
■ 스위스, 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
SNB는 작년 9월 금리를 동결하기 시작한 뒤 세 차례 회의만에 인하를 단행했다.
스위스는 대표적인 '마이너스 금리' 실험을 하던 나라였지만 주요국들이 2022년 시작한 금리 인상 사이클에 보조를 맞춰 금리를 올린 바 있다.
SNB는 2022년 6월 16일 기준금리를 -0.75%에서 -0.25%로 50bp 높인 뒤 그해 9월에는 75bp, 12월 50bp 인상을 단행했다.
2023년 들어서도 3월 50bp, 6월 25bp를 인상했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6월까지 5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이다.
분기에 한번씩 금리결정을 하는 구조여서 5차례에 걸쳐 평균 50bp 인상폭으로 250bp를 인상했다.
이제 그 흐름이 인하로 바뀌었다.
■ 스위스, 1%대 저물가 확인하고 금리 내려
최근 스위스 물가는 빠르게 둔화되면서 금리인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스위스 CPI 상승률은 작년 5월 2.2%에서 그 다음달 1.7%로 뚜렷한 둔화세를 나타냈다.
CPI 상승률은 대략 작년 중반 시점부터 2%를 하회하기 시작했다.
물가 상승률은 작년 6월 1.7%를 기록하면서 1%대에 접어든 뒤 올해 2월엔 1.2%까지 낮아졌다.
최근 발표된 2월 CPI는 시장의 예상(1.1%)을 약간 웃도는 것이었지만, 1월(1.3%)보다 조금 더 낮아진 수치였다. 또 1.2% 상승률은 2021년 10월 이후 최저치였다.
스위스는 대략 10개월 가까이 1%대 물가의 흐름을 지켜본 뒤 인하에 나선 셈이다.
SNB는 올해 물가 전망을 기존의 1.9%보다 낮춘 1.4%로 제시했으며, 내년과 내후년 수치도 1.2%, 1.1%로 낮게 전망했다.
토마스 조던 SNB 총재는 "지난 2년 반 동안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완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이 2% 미만 수준을 유지해 물가안정과 동일시하는 범위 내에 있다"며 "새로운 전망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범위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엔 '환율 요인'도 작용했음을 알렸다.
조던 총재는 "인플레 압력의 큰폭 둔화와 스위스프랑의 상승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미국, 유로존, 영국 등이 금리인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스위스가 금리를 내리지 않고 계속 버티면 스위스프랑이 상대적으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
통화 강세는 수입물가 둔화 압력으로 작용해 물가를 더 둔화시킬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 영란은행, 인상 주장 자취 감춰...이젠 인하 주장 늘어날 분위기
영란은행(BOE)은 21일 기준금리를 5.25%로 동결했지만, 분위기는 인하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BOE 통화정책위원회(MPC)는 8대1로 금리 동결에 찬성했으며, 위원 중 1명이 25bp 인하를 주장했다.
지난 2021년 9월 회의 이후 처음으로 인상 주장이 사라졌다.
지난 2월 금리인상 소수의견을 제시했던 Haskel과 Mann은 이번에 동결을 선택했으며, Dhingra는 25bp 인하를 주장했다.
지난 2월 회의에서는 6대3으로 금리가 동결된 바 있다. 당시엔 위원 가운데 2명이 25bp 추가 인상을, 1명이 25bp 인하를 주장해 2008년 8월 회의 이후 처음으로 인하와 인상 소수의견이 맞서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제 인상 주장은 없어지고 인하 주장이 세력을 넓힐 분위기가 마련된 가운데 금리가 동결된 것이다.
앤드류 베일리 BOE 총재는 "최근 몇 주 동안 인플레이션이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는 고무적인 신호가 나타났다"며 "아직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시점은 아니지만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금리인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에선 미국처럼 영란은행도 6월에 인하를 시작해 연내 3차례 가량 내릴 것이란 관측들도 나오고 있다.
MPC는 성명서에서 "매번 회의 때마다 정책의 제약 정도를 지속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며 향후 개최되는 회의에서 인하를 논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BOE는 지난 2월 MPC 회의 이후 인플레이션이 비교적 급격한 둔화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영국의 2월 CPI는 전년비 3.4% 상승해 예상을 하회한 바 있다. 이 상승률은 2021년 이후 최저치였다.
BOE는 임금 상승률이 둔화됨에 따라 올해 2분기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여전히 인플레이션에 맞서기에 충분히 높은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박윤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BOE는 아직 근원물가 상승률(4.5%)과 임금 상승률의 절대 레벨이 높아 데이터를 더 모을 필요가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면서 "인하 시점을 조율하는 데 있어 핵심 변수는 2분기 디스인플레이션 기조 유지 여부와 4월 임금 결과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두 변수를 모두 확인한 다음 가장 빠른 인하 시점은 6월이며, 영국의 지표 변동성이 완화되는 것으로 볼 때 6월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며 "만약 금리인하 기대감과 실질임금 상승세가 부동산, 소비 반등을 야기해 인하가 늦어지는 경우라도 8월엔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연준, ECB, 영란은행 모두 6월 인하로 모아진 전망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ECB 총재는 20일 "6월에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에도 충실하게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라가르드는 "우리는 3월 예측에서 제시한 인플레이션 경로가 유효한지 오는 6월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라가르드는 6월 첫 인하를 시사하면서도 이후 정책 경로는 약속할 수 없다고 했다.
시장에선 하반기 유로존 인플레가 ECB 목표인 연율 2%를 밑도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물가를 낙관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