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 칼럼) 최우방국에 당한 아시아 경제대국들

2025-08-01 13:55:39

사진: 니혼게이자이신문(일본경제신문)이 각국의 관세협상 결과를 보도하는 기사
사진: 니혼게이자이신문(일본경제신문)이 각국의 관세협상 결과를 보도하는 기사
[장태민닷컴 장태민 기자] 전날 아침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뒤 일본 언론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일본 언론들은 한미 관세협상 타결 결과를 속보로 타전하는 등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협상 결과를 두고 상당한 논의가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조건이 일본보다 '낫다, 못하다'는 등의 상반된 반응들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도 일본보다 '잘했다, 못했다'는 등의 반응이 나오는 등 두 나라의 관세협상 결과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론 일본의 협상 결과가 '앵커'가 되다보니 한미 관세협상도 일본과 유사할 수 밖에 없었다.

■ 일단 두 나라 모두 '당한' 협상은 맞다

지금은 모든 나라들이 미국에게 소위 '삥을 뜯기는' 중이다.

사실상 세계 최강대국이 대놓고 자신의 주요 교역국, 동맹국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들이다.

일본과 한국은 아시아 4대 경제대국에 속하지만 두 나라 모두 인구 문제 등으로 경제 모멘텀이 많이 약화됐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에 아시아 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내주려는 중이며, 한국은 향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에 4위 자리를 내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과 트럼프가 중국에 대항해 아시아 자유진영 대표 국가인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바이든은 동맹국들의 입장도 감안해 '함께' 중국에 맞서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바이든에 비하면 동맹국들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트럼프는 거대한 미국 국채 이자를 갚기 위해 동맹국들, 특히 무역에서 흑자를 나타내는 주요 교역국들에게서 많은 돈을 뜯어가고 있다.

■ 바이든과 트럼프 전략의 차이...그리고 등 터지는 동맹국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의 다자적인 협력을 적극 활용해 중국을 견제했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 일본, 유럽, 인도 등과 긴밀하게 공조해 중국에 대항한 '연합전선'을 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쿼드(Quad) 등을 활용해 중국에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를 먼저 내세운다. 보호 무역주의 역시 미국의 이익 확보를 위한 중대한 수단이다.

트럼프는 다자적인 수단보다는 양자 관계를 중시하면서 개별 국가들을 압박하는 전략을 취한다.

예컨대 이번 관세협상에선 각국 대표들을 불러 '뭔가 조공을 바칠 때만' 관세율을 예컨대 1%P씩 깎아주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협상 태도를 취했다.

초강대국인 미국만이 쓸 수 있는 협상 전략이었다.

사실 주변엔 거친 미국 이기주의와 중국의 패권 야욕에 맞서기 위해선 '한일동맹', 혹은 더욱 긴밀한 한일 관계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다.

일본은 이번 관세협상에서 여러차례 협상단이 미국으로 날아가 협상을 했으나 너무 많은 것은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일본의 결과는 한국의 '기준'이 돼 버려 사실 두 나라 모두 크게 뜯겼다.

■ 트럼프, 아시아 4강 중 핵심동맹국에 동시에 대규모로 돈 뜯기

지금 한국과 일본 중 누가 협상을 더 잘 했느냐 하는 얘기는 '누가 덜 손해를 보느냐'는 얘기다.

두 나라 모두 된통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누가 그나마 선방했느냐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를 물지 않다가 새롭게 무는 꼴이며, 일본 역시 저율의 관세만 물다가 큰 폭의 관세를 물게 됐다.

일단 미국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 대해 '25% 관세를 15%로 깎아줬다'고 크게 생색을 냈다.

관세를 물지도 않거나, 약간만 물던 동맹국들에게 일방적으로 25% 관세율을 설정한 뒤 이를 좀 내려주면서 크게 인심을 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같은 '초현실적인 협상기법'에 따라 한국과 일본 모두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졌다.

그리고 미국은 관세율을 깎아줬으니 이제 미국에 돈을 보내라고 한다.

일본은 5,500억달러,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한국은 경제규모가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나라지만 원화로 500조원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금액을 내놓게 됐다.

트럼프는 에너지 구매와 관련해 일본엔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440억달러를 요구했고 한국엔 1,000억달러를 요구했다.

■ 한-일 모두에게 가장 중요했던 자동차...관세율, FTA국가 '예우' 따윈 없었다

이번 관세협상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 모두 자동차가 가장 중요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 두 나라 자동차 모두 15%의 관세를 물게 됐다.

하지만 협상 전 한국은 0%, 일본은 2.5%의 관세를 줄고 있었다가 두 나라 모두 15%가 됐기에 '상대적으로' 한국은 2.5%P 불이익을 본 셈이다.

즉 한국은 FTA 덕분에 0%의 관세율로 미국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일본은 2.5%를 물고 들어가야 했지만, 이제 두 나라 모두 미국에 자릿세 15%를 내고 물건을 팔아야 한다.

이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이 미국의 FTA 국가였다는 점을 감안해 '관세율' 차원에서 일본과 비길려면 15%가 아니라 12.5%를 받아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기재차관 출신인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1일 "자동차 관세를 일본은 2% 정도 적용받고 있었는데 이제 동일하게 자동차에 15%를 적용받으면 일본차 경쟁력이 커진다. 우리 자동차의 (상대적인) 손해가 커져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가 FTA 국가를 예우해주길 기대하긴 어려웠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날 한미 FTA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주장했지만 미국은 15%를 일괄적용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민주당 최고위원 중 경제전문가 포지션을 쥐고 있는 이언주 의원은 1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관세율을 12.5%까지 낮췄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국제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무식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이 FTA 체결국이어서 12.5%를 얻어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FTA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의 말처럼 지금의 미국 협상기법을 감안할 때 미국이 FTA 국가에 대해 특별 배려를 해줬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한국 기업들 걱정이 된다.

■ 3500억불 vs 5500억불

한국과 일본의 미국 투자 규모는 얼마가 적정할까.

일단 일본이 5,500억불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앵커를 높여버렸기에 한국도 대거 투자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규모로 따지면 한국이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컨대 한국의 GDP가 1.87조달러 수준인 데 반해 일본은 4.03조달러다.

최근 수년간 한국, 일본 모두 자국 돈 가치가 달러에 비해 떨어진 나라들이며, 현 시점 기준으로는 일본의 GDP 덩치는 대략 한국의 2.2배 정도다.

일본이 내는 돈을 기준으로 대략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은 대략 2,500억달러가 적정하다.

하지만 미국이 이 기준에 동의할 리 없다.

미국이 한국, 일본의 GDP를 고려해 배려할 리도 없다. 미국은 그저 한국과 일본이 자기 나라에서 얼마나 팔아먹는지를 기준으로 돈을 제시했다.

한국의 대미수출은 1,300억불에 육박하고 일본은 1,400억불을 넘는다. 작년 한국의 대미국 무역흑자 규모는 557억달러, 일본은 685억달러였다.

즉 경제 덩치를 감안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과 더 많은 거래를 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미국은 일본 경제규모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한국에게도 일본 못지 않은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 미국 에너지 개발 혹은 구매, 이건 한국이 일본보다 낫지 않을까

한국은 미국산 LNG 등 에너지를 1천억불 구매하기로 했고, 일본은 440억불 개발사업을 하기로 했다.

일본이 돈을 덜 쓰는 것 같지만 사실 일본의 포지션이 좋지 않다는 평가도 많다.

알래스카에 LNG 매장량이 많다는 것은 다들 알지만, 그간 개발이 제대로 안 됐던 이유는 채산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이 알래스카 천연가스전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던 이유는 개발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며, 일본이 이를 덥석 문 것을 두고 무모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선 일본이 저 곳을 개발하기 위해선 440억달러가 아니라 600억달러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미국이 개발과 관련해서 꼬드길 때 한국은 핑계를 대서 피하자는 얘기까지 있었다. 아무튼 이 사업은 일본이 적극적으로 하기로 했다.

한국은 대신 에너지를 사주기로 했다. 어차피 에너지를 구매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중동산 등의 비중을 조절해 미국 물건을 좀더 사주기로 한 것이다. 미국산 LNG는 중동산보다 싸지만 운송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 삥 뜯긴 미국 최우방 아시아 경제대국들

유럽이 미국에 바치는 조공에 비해 아시아의 '양대 미국 우방'만 너무 과도한 부담을 진 것 아닌가 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EU는 지난 27일 한국, 일본과 같은 15%의 관세를 물기로 하고 미국에 6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하기로 했다. 미국산 에너지는 7500억달러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EU는 일본, 한국보다 훨씬 큰 경제권이다.

EU엔 27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다. 이 지역의 25년 명목 GDP는 20조달러에 달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이 GD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나머지 24개국이 절반을 차지한다.

EU는 작년 상품 기준으로만 미국에 6천억달러 가량을 수출하고 2,3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EU와 비교할 때 한국, 일본 둘 다 너무 큰 부담을 진 것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 일본 양국의 투자와 관련해 '트럼프가 투자처를 마음대로 지정한다, 수익의 90%는 미국에 재투자한다'와 같은 독소조항을 넣었다.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약속을 잘 지키는 지 확인하겠다고 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erat Again, 미국 조선산업 위대하게)를 제안하고 이 분야에 1,500억불을 투자하기로 했다. 즉 3,500억불 중 1,500억불은 미국 군함을 포함해 선박을 건조하는 데 투자된다.

어차피 미국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마스가를 제안한 것은 꽤 큰 의미를 지닌다.

선박 건조비중을 보면 중국 54%, 한국 28%, 일본 12%, 미국의 비중은 1%도 안 된다. 미국은 사실 0.1% 정도로 실제 배를 제대로 만들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한국의 미국 조선 제안은 인프라를 상당부분 재구축해 주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미국이 군함 등 특수한 배를 만드는 최첨단의 '기술'은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도 얻는 게 있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미국이 아시아 최우방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는 느낌도 든다.

또 일본에선 '일본이 잘 했다, 한국이 잘했다', 한국에선 '한국이 잘했다, 일본이 잘했다'는 등의 논란이 인 가운데 일본이 저자세로 너무 많은 것을 내주면서 한국도 '똑같이 당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보인다.

경제 모멘텀을 잃고 위기에 처한 아시아의 두 경제대국은 자신들이 최우방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에게 사이 좋게 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제 두 나라는 서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제·통상 협력을 보다 강화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장태민 기자 chang@changta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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